“난 널 내 딸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차가운 북부의 주인이자, ‘클라디우스 대공가’의 주인인 ‘내’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 내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헤스터가 아니니까. 그러니 슬퍼할 필요도 없다. 불쌍한 헤스터. *** 내가 헤스터에 대해 아는 건 얼마 없다. 클라디우스의 세 번째 후계자 후보라는 것. 클라디우스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클라디우스의 손에 죽는다는 것. 헤스터의 몸에 빙의하고 필사적으로 대공을 피해 다녔지만, 나는 결국 그의 세 번째 후계자 후보가 되었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건 헤스터지,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이 지독한 가난에서 살아남아 어떻게든 버틸 생각이었다. “……전하.” 그러나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나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저를 왜 데려오셨어요?”
“엘리. 내가 누굴 만나든 누구와 결혼하든 널 버리진 않을 거야.” 사랑하던 남자와의 결혼식 날, 악녀 엘로이즈 그리넬은 죽기로 결심했다. 이생에서는 도저히 그를 죽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빌어.” “넌 나를 정말 모르는구나. 난 원수에겐 절대 안 빌어.” 죽음을 대가로 4년 전으로 회귀한 엘로이즈는 연인이었던 황태자 카일에게 복수하기 위해 잊혀진 영웅의 핏줄, ‘헤이든 노스’를 찾아가 그를 황제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만……. “네가 황제라 해도 상관없으니까 꺼져. 아니, 애초에 황좌든 뭐든 관심 없어.” 헤이든은 세상을 그의 손에 쥐여 주겠다는 말에도 관심이 없다. 아니, 없었다. 영웅의 핏줄이 악녀를 사랑하기 전까지는. “멋대로 내 인생에 끼어들어 놓고…… 이렇게 사라져 버리겠다고?” 엘로이즈의 계획은 그를 이용하는 것이지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널 마음 편히 좋아하고 싶으니까.” 그러나 낯선 열기로 가득 찬 그의 눈을 본 순간, 엘로이즈는 직감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는 날. 어쩌면 저 남자가 제게 남은 유일한 후회가 될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