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하룻밤의 실수라고 해둘까요?” 꿈이라면 실로 지독한 꿈이었다. 카일은 두 주먹에 피가 맺힐 만큼 말아쥐었다. 윈터는 카일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달콤하게 속삭였다. 신탁 속 나를 죽였던 남자에게. “다들 짐승처럼 서로를 원하다가 해가 밝으면 이건 하룻밤의 실수라고 우기죠.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거예요.” 카일은 대답 대신에 윈터의 몸을 힘으로 짓눌러 침대에 눕혔다. *** “살아, 윈터 벨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애달프게 웃었다. 절벽 끝에 매달려 있던 윈터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진귀한 보석을 선물 받았을 때도 충족되지 않던 마음이 지금은 존재감을 표하고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아아. 우리의 반년짜리 계약 결혼은, 어느 한쪽을 파멸로 몰아넣게 되겠구나.
“앞 좀 잘 보고 다니지 그래? 피아나.”환생했다.그것도 눈이 안 보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녀로.지가 사생아인데도 하나밖에 없는 언니는 나를 무시했으며.“이번에 네 혼약자가 결정됐단다. 반푼이인 너라도 북부를 통치하는 글라키에스 대공께서 널 받아 주시겠다지 뭐니?”새어머니는 기뻐하면서 그 전 혼약자를 효수했다는 냉혈한에게 나를 팔아넘겼다.다 포기하고 북부로 가는 길목에서 도적 떼에게 습격을 당했는데....그 냉혈한이 나를 구했다!“운이 좋았군.”뭐라는 거야?나는 전생에서부터 운이 더럽게 없었다.* * *전생의 기억이 있다는 걸 감추고 북부 글라키에스 성으로 온 지 며칠째.대공님이 나를 갑자기 첨탑으로 데려가더니 수작질을 부린다.“파란색은 눈물의 색과 닮았어. 사람들은 으레 파란색이 하늘과 바다를 닮았다고 하지만, 난 눈물의 색과 닮았다고 봐.”대공님이 내 손을 잡아당겨서 제 가슴께에 댔다.“심장의 색깔은 붉은색이야. 생명력이 넘치고 강렬한 기운을 품은 색인데……”네?저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색깔이 뭔지 알아요, 대공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