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미등록자’ 현대 사회는 하명과 같은 인물을 그렇게 지칭했다. 하명은 대한민국의 남녀노소 모두가 아는 대기업 ‘성운’의 회장 고윤석의 혼외자였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남자. 고 회장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어머니를 위해 성운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명분이라면 하명은 사람을 해치는 일도 꺼리지 않았다. 암암리에 성운의 뒤처리를 돕기로 계약된 영동병원의 장례식장. 그 날은 아주 기묘했다. 원무과 직원인 해수는 젊은 남자 김상연의 아주 조용한 빈소를 보았다. 장례 첫날인데도 저렇게 조용하다니. 무언가 이상했다. 그날 밤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유족이나 조문객이겠거니 생각하며 해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딘가 꺼림직했던 빈소의 주인, 김상연의 얼굴을 한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빨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니, 과연 그런다고 달라질 일이었을까? 피할 수 있었을까? “표정이 왜 그러시죠?” 남자의 길쭉한 눈꼬리가 가볍게 휘었다. 그러자 얼핏 사나워 보이던 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유순해졌다. “꼭 죽은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