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가 내 이복동생과 바람이 났다. “정말 미안해. 나도 내가 너한테 못 할 짓 한다는 거 알아.” 한때 그에게 주었던 진심이 아깝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타인만도 못한 가족이 제게 형편없는 맞선 자리를 들이밀기 전까진. 그런데 막상 나가 보니 맞선 상대가 바뀌어 있었다. “세 달 정도, 서로 알아 가는 시간으로 두고 약혼부터 시작하면 어떻습니까.” “굳이 저일 필요가 있나요?” “나는 주희진 씨가 마음에 듭니다.” 직장 상사이자 SA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하도현. 그에게 전남친과의 이별 장면을 들킨 저로서는 상대하기 곤란한 남자. “난 잘할 자신 있습니다. 외조든, 내조든, 밤일이든.” 남자의 욕망 서린 저음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이제 더는 사랑 따위 믿지 않기로 한 저에게, 서로의 이익만을 위한 약혼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기왕 불장난하는 거 제대로 해 봅시다, 나랑.” * * * “솔직히 말해 주세요.” “뭐를.” “저랑 자고 싶어서 오신 건가요?” 노골적인 물음에 도현의 눈동자가 한순간 깊어졌다. “아니라고는 못 하지.” 다음 순간, 방금 전 입맞춤은 전초전이었다는 듯 깊숙하게 입술이 맞물렸다.
“곧장 침대보다는 연애부터 시작하는 게 더 낫겠어요?” 기문건설 대표 기태한. 그 기문의 혼사를 담당하게 된 정서연. 기태한 대표는 어디까지나 귀한 고객일 뿐이었다. 갑과 을. 명확해진 그 선을 남자가 넘어오기 전까진. “눈치도 빠르고, 일도 잘하시는 분이 왜 못 알아듣는 척을 하실까.” 우리, 밤에도 볼까요. 그에게 지명된 서연으로서는 흔쾌히 받아들이기 곤란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고작해야 반년. 그저 찰나의 이끌림에, 한순간의 욕망을 풀어내는 사이. 언젠가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하는 관계였다. “잠만 자요.” “그게 편하겠어요?” 그래야만 한다. 애초에 상대는 제가 욕심낼 수 없는 남자였으니까. “정서연 씨가 원하면 그렇게 해야지.” “…….” “뭐부터 할까요. 옷부터 벗겨 볼래요?” 그러나 사랑. 겨울을 덮친 어지러운 미풍에 끝내 휩쓸리고 말았다. 결국 그 오만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