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부터 스물일곱까지 재언과 늘 함께였다. 첫사랑이었고, 유일한 사랑이었다. 낮에는 비서로, 밤에는 잠자리 파트너가 된 지 3년째. 더 이상 그의 곁에 머물 수 없게 된 해윤은 사직서와 함께 이별을 통보했다. “그만두겠습니다. 회사도, 본부장님 옆에 있는 것도 전부 다.” “갑자기 왜.” “본부장님과 하는 거 이제 더는 재미가 없어져서요.” “그래서 이제 딴 놈이랑 붙어먹고 싶다, 그 말이야?” “…안 될 거 없잖아요.” 그를 떠나야 하는 진짜 이유를 숨기기 위해서 해윤은 거짓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서 비서.” 마른 낙엽같이 가슬가슬한 재언의 음성이 해윤의 머리 위로 흩어졌다. “네.” “서해윤.” “네.” “해윤아.” “…네.” “윤아.” “…….” 호칭이 바뀔 때마다 재언의 음성은 더 낮고, 더 부드럽게 변해갔다. 다정한 듯 서늘한 말이 이어졌다. “왜 안 하던 짓을 해. 숨소리만 들어도 네 기분이 어떤지 다 아는데. 어디서 어설픈 거짓말이냐고.”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 남자를 속이는 일도, 그를 떠나는 일도. 어쨌든 해윤은 이별을 고했고, 울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재언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해윤은 재언을 향한 첫정을 반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