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기다리셨죠?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늦긴 뭘 늦어, 기다린 적이 없는데. 잘생겼지만 처음 보는 남자가 위기에 몰린 해인의 삶을 파고들었다. “설마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 하면서 나중에 저한테 반했다고 고백하시는 건 아니겠죠?” “왜 아니겠습니까. 조만간 또 봅시다.” 취미는 발작. 특기는 생떼 쓰기. 자본주의 노예인 그녀 앞에, 곱게 자란 망나니 도련님이 나타났다. * “거슬려! 거슬려! 손끝에 꽂힌, 눈에 안 보이는 가시처럼, 아주 거슬려서 미치겠다고!”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거슬렸으며 괘씸했고, 또 지금은... 예쁘지만 열받아. 해인을 세 번째 볼 때까지 그는 깨닫지 못했다. 도파민 호르몬이 천하의 신이준에게도 작동할지 그 누가 알았겠느냐고. ‘늘 민해인은 가만히 있었고, 나 혼자서 발작을 한 거였지.’ 이쯤 되니 이준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날 허락해 주긴 할 거야? 언제?”
“우리 딱 한 번만 더 자자.” 아버지의 강제로 약혼을 결심한 그날, 하필이면 평생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려 했던, 1년 전에 헤어졌던 남자가 찾아왔다. ”오늘은 어떤 남자야?” ”그동안 나보다 더 만족시켜준 남자는 있었어?” ”당신 그런 여자잖아. 남자랑 자고 나서 점수나 매기는.” 그것도 돌연 흑화 된 채로. ”우리 그날 밤 기억은 각자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두자고요.” ”나는 백 마디 말보다 눈빛과 몸짓, 행동을 더 믿는 편이거든.” 그녀가 겨우 굳힌 결심을 단번에 흔들어 버린 남자. 위험하다. 지유는 살면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야 할지 몰랐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버릴 용기를.
“결혼 계약을 정말 파기하시겠습니까?” “네.” 혜나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결혼 생활 3년 내내 바라고 바랐던, 자유와 해방의 날이었다. “이혼 위자료 100억 원을 현금으로 지불하시면 됩니다.” 예?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아무리 재벌가라지만, 계약 결혼을 파기하는 대가로 고액을 요구하다니 너무하잖아. 어쩔 수 없지. 돈만 벌 수 있다면, 불륜녀든 악역이든 무슨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다 하는 수밖에. 비록 아역배우 시절 '네똥 칼라똥' 유행어로 이미지가 굳어버린 그녀였지만, 위자료를 벌기 위해 다시 충무로로 뛰어든다. “거참, 이혼 못 한다고 해도 그러네.” “지금부터 하면 되지. 고깟 사랑.” 그녀는 몰랐다. 이혼 위자료를 청구 받던 날, 비로소 완벽한 남편의 사랑이 시작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