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겸
원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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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결혼

도박에 빠진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빚에 허덕이던 희율. 결혼하지 않으면 승계 싸움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재하. 사랑을 믿지 않는 두 사람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결혼이란 족쇄를 택한다. 정해진 기간은 단 2년. 여덟 번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결혼 생활. 채희율은 알게 되었다.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버팀목이, 한순간에 허상처럼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서재하는 알지 못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다정함이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독이, 회한이란 거친 파도가 되어 제게 돌아오리란 것을. *** “지금보단 덜 치열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그제야 정신을 차린 희율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손님.” 내가 아무리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어도 그렇지. 남자의 장난은 정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희율은 최대한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애썼다. “아니, 서재하 씨. 서재하 씨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직 남아있는 열 때문일까 눈가가 뜨거웠다. 희율이 눈에 힘을 줬다. 불쾌함을 표현하는 희율을 보고도 남자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돈 때문 아닙니까.” “…….” “채희율 씨가 그렇게 사는 이유.” 머리 위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10억의 빚이. 서재하는 희율의 삶을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희율의 옥탑보다도 커다란 병실에 정적이 흘렀다.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꾹 다물려 있던 입술을 뗀 희율이 물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한 표정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내 아내가 되면 됩니다.” 너무나도 사무적인 청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