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현주 씨 가만 못 두겠는데.” “…….” “지금 몸이 달아 미칠 거 같아. 어떻게, 참을까?” 자신의 옆을 지탱하는 팔이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의 뜨거운 숨이 피부를 자극했다. 남자가 품어 내는 열기에 에어컨 바람도 식혀주지 못했다. 끈적끈적한 공기와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한 펜트하우스. “다시 물을게요. 나 참아요?” “…….” 그녀가 대답이 없자 그가 그녀의 턱을 들고 눈을 마주했다. 대답을 할 때까지 물어보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아뇨.” 현주는 드디어 입을 뗐다. “참지 말아요.” 나도 당신이 좋으니까.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권기주라고 해.” 유일한 어른이자 선생님이었던 권기주와 하룻밤을 보냈다. 알아본 걸까. 분명 그날 밤에는, 새벽에도 못 알아보는 눈치였는데. 이후 입주 과외 면접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니까, 너는 몇 년 만에 만난 선생님하고 한번 놀고 정리하려고 했다는 건데.” “…선생님.” “선생은 무슨. 윤영아. 내가 선생 때려치운 게 언젠데.” 그가 실소를 터뜨렸다.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너랑 자려고 저녁 시간까지 빼 뒀는데.” “제가 선생님이랑 다시 그럴 줄 아셨어요?” 권기주는 갑. 지윤영은 을. 서류상에서 글자로 확실해진 관계에서 그가 선을 넘어오고 있었다. “응. 어차피 넌 나랑 자게 될 거라니까.”
감히 바라봐서는 안 될 서상가의 외아들이 불임인 첫사랑을 두고, 돌연 운전기사의 딸인 이연에게 청혼했다. “이연아. 너는, 날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상무님한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뭐든지요.” “그럼 나랑 결혼 좀 해 줘야겠어.” 하지만 이 결혼은 청혼부터 모든 과정이 기이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짝사랑하던 남자와의 결혼에 설렜던 이연은 마음과 몸을 다 바쳐 헌신한다. 남편이 그녀를 방치한 채 첫사랑을 만나러 가도, 시댁에서 여전히 그녀를 메이드 취급만 해도, 그녀는 행복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 결혼의 내막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더러운 진실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 모두에게 농락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이 서상가 황태자에게 맺어준 운명의 짝이라며 세상의 사랑을 듬뿍 차지하던 그의 오랜 첫사랑. 그녀가 성녀의 가면을 벗고 이연을 조롱했다. “이연아. 내가 쉬운 말로 정리해 줄게. 일부일처제 제도 아래 있는 대한민국에서 서상가가 합법적으로 씨받이를 들이려는 방법이 이거였던 것뿐이야.” 이연은 그의 진짜 아내가 아니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던 남편은 처음부터 남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한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야…. 그게 맞는 거지.’ 그 말이 처음으로 무너져 버린 밤이었다. 순식간에 남자로 돌변한 선생님의 모습은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두려웠다. 소은은 자신이 어찌해 볼 수 없는 그의 힘에 온통 짓눌릴 것 같았다. 이 남자가 끝내 무너져서 금기를 깼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무거운 파도가 덮친 것처럼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런 게 어른 남녀의 세계인 건가. 이도는 소은의 달큰한 입술에 한 번 닿는 순간 이성을 지배당한 듯 도저히 자중할 수가 없었다. 덜덜 떠는 제자를 보며 그는 혼자서 한숨을 삼켰다. 그녀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건 진작 깨달았는데도 무시하고 욕심을 채우고 싶었다. 어쩌다 이렇게 너를 원하게 되었을까. 제자였던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달이나 지났다고…. “욕심나면 가지라던 패기는 어디 갔어. 이제 정말 가지고 싶어졌는데.”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이도의 목소리로 직접 듣자 소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지고 싶다니…. 선생님이 날…. “이제는 못 물러. 무르기엔 이미 늦었으니까. 지금 꼭 가질 거야.” “저, 저는 괜찮으니까…. 계속해 줘요.” “이렇게 떨면서….” “무서운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