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걸 말해봐. 그런 게 아니었으면 이 밤에 날 찾아오는 수고는 하지 말았어야지.” “……계약 결혼이요. 이게 오늘 내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예요.” 도훈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갈수록 서윤의 몸은 긴장으로 굳어갔다. 하지만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가족이라 믿었던 이기적인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남자와의 결혼이 꼭 필요했다.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계약 결혼이. “이 계약으로 내가 얻게 되는 이득은 뭐가 있습니까?” “자유롭게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요. 신경 쓰이지 않게 할게요. 완벽한 부부로 보일 자신 있어요.” “맘에 드네.” . . . “완벽한 부부라고 했으니 잠자리도 물론 허락한다는 뜻이겠고.” 잊고 있던 지난 밤의 기억이 밀려왔다. 신부 대기실에서 그의 손을 잡은 순간, 의무가 되어버린 그의 조건이었다. “난 아이를 원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무언가 갈구하듯 집요하게 따라붙는 도훈의 눈빛에 서윤의 검은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오늘 처음 보잖아요. 절 아세요?” “잘 알죠. 그래서 온 거고.” 언니의 병원비와 빚에 허덕이던 수연 앞에 디에스 물산의 대표 차윤재가 나타났다. 그런데 일개 호텔 메이드에게 다짜고짜 찾아와서 하는 말이 ‘결혼하자’라니. 어이가 없었다. 원하는 것이면 그게 누구든 선택할 수 있는 위치였다. 차윤재 대표는.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수연이 마다할 것은 없었다. 언니의 병원비를 해결해 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만큼 배짱이 좋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줄 사람이 필요해요.” 윤재가 원하는 조건은 확실해 보였다. 인형처럼 조용히 곁을 지키다 언제든 흔적 없이 사라져 줄 여자. 그 조건에 수연은 완벽히 부합했다. “네, 하겠습니다. 결혼.” *** 병실 문이 열리고, 윤재는 침대에 누운 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동생 윤서가 의식 불명이 된 지 3주가 지났다. 윤서를 이렇게 만든 그 연놈들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처절한 고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동생의 전 연인 박현수와 그의 여자 지수연.’ 버텨.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라고. 그 시작은 내가 먼저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