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은
김도은
평균평점
언니의 남자

평생을 언니에게 착취당하며 살아왔다. 옷이나 액세서리는 물론, 하다못해 좋아하는 반찬 하나까지도 언니가 원하면 모두 내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이젠 결혼을 삼 개월 앞둔 약혼자까지. “너는 무슨 애가 연락도 없이 남의 집에 쳐들어와? 예의도 못 배웠어?” 제 약혼자와 침대를 뒹구는 모습을 들켰을 때도, 사과는 고사하고 얼룩덜룩한 나신을 뽐내듯 드러내며 도리어 저를 꾸짖는 언니. “이번 일은 묻고 갔으면 좋겠구나.” 그럼에도 부모는 여전히 저에게만 인내를 요구했다. 언니의 무자비한 약탈과 부모의 편향적인 애정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그때, 운명처럼 나타난 한 남자. ‘서이현.’ 그는 언니가 평생을 염원했던 남자였다. 조모를 구해 준 보답으로 무엇을 원하느냐 묻는 그에게 저도 모르게 말했다. “저랑 만나 주세요, 연애 상대로.” “제 언니가 그쪽을 좋아하거든요.” 한 번쯤은 언니의 것을 가져 보고 싶었다.

친구 안 해

“됐다, 나빈아! 됐어!” 한국의 마틴 스코세이지, 최봉렬 감독에게 푹 빠져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배우가 된 나빈. 드디어 그의 작품에 캐스팅된다. 그것도 은퇴작에! 그런데 이 무슨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 상대 배역이 남도하란다. 야트막한 담 하나 사이에 두고 자란 죄로 두 살부터 지금까지 무려 25년을 가족처럼, 남매처럼 지내 온 친구. 같은 목욕탕, 같은 탈의실에서 만나도 놀라기는커녕 ‘온탕부터 갈래? 냉탕부터 갈래?’ 하고 물을 수 있는 죽마고우! 근데 그런 애랑 뭘 찍으라고? 액션도, 호러도 아니고 로맨스? 하지만 데뷔 때부터 줄곧 딱 10편만 찍고 은퇴하겠노라, 밝혀온 최 감독. 여기서 물러나면 더는 기회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영화에 참여하게 된 나빈. 하지만 오랜 친구 사이였던 도하와 로맨스를 찍는다는 게 생각보다 더 쉽지 않은데. 매일같이 감독에게 꾸중을 듣는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지던 중, 와중에 도하는 집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그녀의 집에서 신세를 지겠다며 통보해 온다. 심지어 월세는 연기 연습으로 내겠다고. 이 이상 우상에게 실망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수락한 제안.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그녀와 달리 그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연인 행세를 하기 시작하는데. “남도하, 넌 어떻게 그게 돼?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여자로 대할 수 있어?” 혼란스러운 마음에 묻지만 돌아오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넌 왜 그게 안 돼?”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카메라만 돌면 단숨에 사랑에 빠지던 너잖아. 근데 평생 네 옆에 있던 나를 좀 더 특별한 시선으로 보는 게 뭐가 어려워?” “난 돼. 널 여자로 보는 거, 연인처럼 구는 거, 나한테 별거 아니었어. 널 사랑하는 거,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고.” 오히려 더한 혼란이었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도하는 또 하나의 쉽지 않은 요구를 건넨다. “해 봐, 유나빈. 본능적으로 거부감부터 느끼지 말고 일단 날 사랑해 보라고. 그러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남도하를 사랑하는 거,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