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의 고시수첩 맨 앞장에는 증명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다. 14년 전 룸메이트였던 상은이 남기고 간 여동생의 사진이다.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난 룸메이트가 너무나 아끼던 여동생 용은. 버릴 수 없어서 간직했던 그 사진을 보며 지훈은 가끔 기도했다.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그런데 어느 날 그녀를 만난다. “혹시 오빠 이름이 안상은인가요?” 순간 용은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보며 심장이 찌릿해진다. 상은의 말이 떠오른다. “손 많이 가고 말 많고 화도 많고 그런데 진짜 사랑스러워요. 모두가 쩔쩔 매죠.” 판사는 방향성이 없어서 드라마로 풀게 없다는 용은의 말을 들으며 지훈은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사랑은 날씨처럼 찾아온다. 예측할 수 있으리라 단언했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저도 모르게 젖어드는 여우비처럼. 티앤에이치 드림 에이전시의 대표 강태하는 FA 대어인 메이저리거 정연택을 잡기 위해 과거 그의 스캔들 상대이자 전국민의 날씨 요정, 지연을 찾게 된다. 처음엔 이용만 하려고 했는데, 알면 알수록 솔직하고 진솔한 그녀의 매력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 * * “장담할 수 있어?” “네?”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아니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냐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태하는 어깨를 펴고 지연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지연이 얼굴을 찡그리고는 말했다. “적어도 지금은 안 좋아해요. 그리고 굳이 장담까지 원하신다면 그렇게 할게요. 안 좋아해요. 장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