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도 이들은 이방인인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따르기 위해 걸음을 떼던 나현의 눈에 들어온 남자.<숙여. 최대한 깊게.>‘뭐?’남자의 입술을 읽은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쾅!굉음의 폭발 소리와 함께 위로 치솟는 자동차.연이어 여기저기서 울리는 주변의 경보장치들.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길거리.“안녕, 못난이?”“헛!”자신을 보며 싱긋 미소 짓는, 아까 길 건너편에서 말을 건네 온…….<달아나, 힘껏.>나현의 독화 능력을 알고 소리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남자.* * *“호락호락하지 않은 건 좋은데…….”평범했던 나현의 일상으로 뛰어든 남자, 루카.그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스펙터클했다.“꽤 귀찮게 구네.”
“오빠, 사모님이 약속한 그 돈…… 내일 입금을…….”“염치가 없네.”그녀의 말을 뚝 잘라 버린 건휘가 긴 다리를 겹쳐 올리더니 술을 한 잔 벌컥 마셨다.“맡겨 뒀어?”“오빠, 이러면 안 되잖아요. 그 자금 분명히 사모님이 주신다고…….”“신하현.”“……네, 오빠.”하현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이제 곧 건휘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줄 것만 같았다.“나한테 너 같은 동생 없어.”“네?”커다래진 하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다.“어디서 개족보를 만들고 그래? 기분 잡치게.”하현은 자신의 뺨을 조롱하듯이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건휘를 망연한 눈으로 쳐다봤다.***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하얀 손가락을 보자 욕망이 들끓었다. 얼굴은 반반하니 봐 줄 만했다.뒤돌아선 하현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자 몸을 굳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돌려세워 그녀의 입술을 탐하고 싶었다. 충동을 억누르지 않고 더 나아가 그녀를 안고 싶었다.하현을 갖고 나면 이 갈증이, 욕망이 사그라질지 궁금했다.그래서 이 욕망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가 볼 생각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안 순간부터 가족을 비롯한 타인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된 그, 강유찬경계의 빛을 띠고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끌리는 순간 그의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넌 이 집에 있는 건 뭐든지 만지고, 보고, 가져도 돼.”***“도둑고양이가 따로 없네.”유찬은 자고 있는 연서의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가만히 떼어주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깨워서 혼을 낼지 말지 고민하던 유찬은 재킷을 벗고 연서를 안아 올렸다. 이대로 소파에서 자게 할 수는 없었다.“까져서는……누가 술을 먹으래? 쯧.”유찬은 연서를 가뿐하게 안고는 방으로 걸음을 뗐다. 제 품에 쏙 안겨 들어온 연서가 고른 숨을 내뱉자 심장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했다. 연서와 같이 있어 외롭지는 않은데 가끔 이렇게 심장이 공격을 받으니 퍽 난감했다.“……!”방으로 다가가던 유찬은 연서가 가슴에 얼굴을 비비자 화들짝 놀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연서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고른 숨을 뱉어내는 연서는 지금 누가 자신을 안고 있는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미간을 구긴 채 연서를 내려다보던 유찬이 못마땅하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나를 아예 죽여라.”
“경찰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도 이들은 이방인인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따르기 위해 걸음을 떼던 나현의 눈에 들어온 남자. <숙여. 최대한 깊게.> ‘뭐?’ 남자의 입술을 읽은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쾅! 굉음의 폭발 소리와 함께 위로 치솟는 자동차. 연이어 여기저기서 울리는 주변의 경보장치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길거리. “안녕, 못난이?” “헛!” 자신을 보며 싱긋 미소 짓는, 아까 길 건너편에서 말을 건네 온……. <달아나, 힘껏.> 나현의 독화 능력을 알고 소리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남자. * * * “호락호락하지 않은 건 좋은데…….” 평범했던 나현의 일상으로 뛰어든 남자, 루카. 그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스펙터클했다. “꽤 귀찮게 구네.”
“서울 경찰청의 경감 권해성입니다. 국과수 법의관 채서경 씨가 맞습니까?”신분을 밝힌 남자는 빨리 대답하라는 듯 재촉하고 있었다.조금 무례한 첫 만남이었지만,“늦어도 집에는 꼭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 남자의 미소는 친근함을 넘어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서경은 저 미소가 자신에게는 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채서경 씨.”“네?”해성은 서경을 부르다 그녀의 집 주변을 한 번 휙 살폈다.“최근 이상한 일 없었습니까?”“네? 그런 일은…….”놀란 토끼 눈으로 올려다보는 서경을 보고 있자니 해성은 가슴이 답답했다.그녀가 누군가의 타깃이 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잡으라는 겁니까? 아니면 어서 일어나라는 손짓입니까?”“아…… 잡으실래요?”“그러죠.”“으앗!”해성이 손을 잡으며 체중을 싣는 바람에 서경은 맥없이 휙 끌려갔다. 버텨 보려 했지만 마음과 달리 몸이 기울어 그의 가슴팍에 코를 들이박을 뻔했다.“이게 잡아 주는 겁니까, 같이 넘어지겠다는 겁니까?”해성의 심드렁한 말투에 서경은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그렇게 확 잡아당길 줄 아니, 그렇게 체중을 실어 올 줄 누가 알았느냔 말이다.“힘을 길러 다음엔 잘 잡아 보도록 할게요.”서경은 이 정도 답변이면 되겠죠? 하는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