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반올림
평균평점 4.50
불야성

유일한 의지처였던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영이 홍콩에 밀입국한 지 7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엄마가 예전에 남긴 유언대로 전당포에 그림 한 장을 가져가게 되고, 그 길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이름.” 눈을 뜨자 어둠 너머로 가장 먼저 보인 건, 홍콩의 두 실세 중 하나인 ‘골든 타이거’ 이태호였다. “……한사영, 입니다.” “나이는?” “스무 살.” “국적.” “한국인…일걸요? 아마도요.” 방구석에서 7년을 갇혀 살았던 자신을 찾을 이유가 전혀 없는, 가장 높은 곳에서 홀로 외롭고 눈부시게 빛나는 남자였다. 사영은 죽어버린 자신의 어머니가 사실은 대단한 위작 화가였다는 사실과 태호가 대화가, 아서 클레멘츠의 마지막 역작인 <슬피 우는 알브레히트>를 7년째 찾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중에 누가 너에게 이 그림에 대해 묻거든, 그 사람을 꼭 붙잡아.’ ‘왜?’ ‘너를 세상 밖으로 꺼내 줄 사람이니까…….’ 세상 밖으로 꺼내줄 사람. 엄마가 남긴 말에 따르면, 눈앞에 있는 저 남자가 바로 자신을 세상 밖으로 꺼내 줄 사람이었다. 그런데, 분명 구원자일 남자의 눈은 너무나도 검고 가난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협조할게요. 대신….” 이건 동아줄인가, 올가미인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사영은 그를 붙잡았다. 돌아가기 위해.

일련탁생
4.5 (1)

그래, 저 눈. 저 눈을 보자마자 도망을 갔어야 했는데. “잘 잤습니까?” 충동적인 하룻밤이었다. 누구든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나를 담당하게 될 형사일 줄은 몰랐다. 지난밤에 애원하고 간청해도 포악하게 허리 짓하던 남자가 짓던 비소. 평범한 공무원이라기에는 몸에 밴 태도가 그악한, 권정백 경감. “순서가 좀 엉망이 되긴 했는데. 우리 좀 할 말이 많은 사이라서.” “…….” “이야기 좀 하시죠. 정이림 참고인.” 말을 맺으며 짓는 미소가 참으로 탁월했다. 가장 큰 실수는 술에 취한 것도, 원 나이트 스탠드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하필이면 저 밤의 마귀 같은 남자인 게 문제였다. 아름답고 또 슬퍼서 나의 아픈 손가락이 될 사람. 그리고 저 남자 또한 분명 몰랐을 거다. 나를 만나 버린 실수로, 평생을 집착하고 목을 맸던 숙제를 가차 없이 내버리게 될 거라곤,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