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국에 잡혀 와 초야를 치르라 명령받았다. 제국은 패망했다. 레데이튼 제국의 황녀 아테이라는 하루아침에 포로가 되었다.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은 황녀는 살 의욕을 잃었다. 껍데기만 남아 그저 전리품처럼 영웅에게 하사되어 혼담이 진행되었다. “초야부터 치르셔야 합니다.” 심지어 혼담은 어이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제국을 무너뜨린 원수인 영웅과 이런 식으로 결혼하느니. ‘차라리 원수를 갚다가 죽겠어.’ 단단히 마음먹은 신부는 부케 대신 비수를 손에 쥐었다. * * * 약혼자를 공격하는 것보다 적극적인 파혼 의사는 없을 것이다. ‘이 결혼이 얼마나 싫은지는 잘 알겠군.’ 비수를 든 신부를 만난 영웅 레오프리크 헬턴은 생각했다. 그러나 포로가 된 황녀와의 혼인 명령은 대륙의 영웅에게도 원치 않은 날벼락이었다. 항명이냐, 결혼이냐. 가급적 조용히 파혼하고 싶었으나 일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둘 중 하나가 죽으면 혼담은 파기된다.” 레오프리크는 혼잣말처럼 그녀에게 전했다. “하지만 당신 계획은 실패했고, 나도 이젠 협상을 할 마음이 없어.” 그는 침대에 눕혀진 아레이라를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서로 맞닿았다. “게다가 내 비밀까지 알아 버렸으니, 그냥 보내줄 수도 없게 됐지.” 황녀의 눈에 투명하게 눈물이 고였다. 이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럼 이제, 할 일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