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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오해의 미학

“그거 내 이름 아닌데. 직업도 틀렸고.” “……네?” “소개가 늦었네요. 명한 호텔 대표 한태준입니다.” 눈앞의 남자를 제 맞선 상대로 오해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수연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분명 모든 시작은 우연이었다. 달가울 리 없는 그런 우연. 맞선 상대를 착각한 것도, 2년 전 공항에서의 첫 만남도 전부 다. 수연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태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수연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었다. 태준은 이대로 수연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 본 강한 흥미가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선보기 싫다면서요. 쉽게 빠져나가긴 힘들 것 같은데 잠깐 나 이용해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우연도 계속 겹치면 운명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우연과 오해로 점철된 만남이 끝내 깊게 얽혀 버린 인연이 되리라고는. 어쩌면 아주 위태로울 만큼. 수연은 직감했다. 더 이상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그러나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때가 너무 늦어 버린 뒤였다. “감당하지 마요. 그건 내가 합니다. 그러니까 이수연 씨는 그냥 내 옆에만 있어요. 그거면 돼.”

유일의 그대

“어젯밤에 있었던 일, 기억 안 납니까?” 상사의 침대에서 눈을 뜬 아침.  지난밤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느냐는 물음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류 비서는 내 입술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네?” “이렇게 만지던데. 예쁘다는 소리까지 하고.” 시훈의 비서로 근무한 지 2년. 지아의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자꾸 생각났거든요. 류 비서가 내 입술을 덮치던 순간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예요. 류 비서가 내 입술을 덮쳤습니다. 나는 그게 첫 키스였고.” 지난밤의 기억이 돌아온 지아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충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훈에게 고백을 받았다. 자신이 첫사랑이란다. 그 끝엔 3개월간의 조건부 연애 제안까지 따라붙었다. “3달 동안 최선을 다해서 류 비서 마음을 얻어 보겠다는 뜻입니다. 나한테 그 정도 기회는 줄 수 있지 않아요?” 분명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으나 지아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날 밤의 입맞춤은 분명 제 잘못이었고 이미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다는 말까지 해 놓은 뒤였으니까. “부사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대신 3달 뒤에는 꼭 헤어져 주세요.” “그래요. 3달 뒤에도 류 비서가 나랑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꼭 그렇게 하죠.” 그날부터였다. 사랑이 처음인 시훈의 다정한 직진이 연애에 지친 지아의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