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이안 리카르트. 새로이 즉위한 해저국의 폭군이자 선왕의 서출. 반란으로 왕위에 오른 그는 육지 왕국과의 혼약을 통해 입지를 다져야 했다. 팔려가듯 떠밀린 신세였지만 이레네는 이 결혼이 기꺼웠다. 페레이안, 그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소년임을 첫눈에 알아봤기에. “미리 말하지만, 내겐 마음에 품은 여인이 있어.” “괜찮아요.” “그러니 내 바다에서 죽은 듯이 살아. 내가 당신을 품을 일은 없을 테니.” 그가 자신을 냉대해도 이레네는 아무렴 좋았다. 분명 그랬는데……. “비께서 숨을 쉬지 못하십니다!” 페레이안과 그의 바다는 이레네를 천천히 익사시켰다. “저와 혼인해서 불행하세요?” “행복할 리가 없지. 당신은 내가 원했던 그 여인과는 도무지 닮은 점이 없으니.” 사랑받지 않아도 좋았다. 그가 다른 여인을 사랑한다는 사실도 감내할 수 있었다. 다만 첫사랑이 비관하는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잘 지내, 이안. 이따금 네 행복이 파도로 전해지게.” 이레네 이플라임은 페레이안의 행복을 위해 그의 바다를 떠났다. 사랑의 불씨에 차디찬 바닷물을 끼얹은 채. *** 페레이안 리카르트는 떠난 왕비가 남긴 짐을 확인하고 나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레네가, 줄곧 냉대했던 그 여인이 자신의 첫사랑임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음을. ‘이안과 결혼하면 분명 행복할 거야. 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육지로 찾아가 네게 청혼할게. 세상 가장 따뜻한 가정을 꾸리는 거야.’ 자신의 불찰로 어린 날의 약조를 지키지 못했음을. 그리고 이레네가 끄고 간 이 사랑은, 다시 불붙일 수 없을 것임을.
재벌가 금지옥엽 손녀딸.그건 적어도 내 얘기는 아니었다.“나 말고 주수덕 씨를 저주해. 어? 그 인간이 시켰으니까.”재계 거물이었던 할아버지, 주 회장의 죽음과 함께 내 삶도 끝났으니까.후계 싸움을 피하기 위해 꿈도, 재능도 억누르고 살았는데…… 모든 게 허무했다.***이대로 끝이라고만 생각했을 때, 열여덟 살로 돌아왔다!‘살기 위해선 유명해져야 돼. 숨죽여 살면 안 돼.’이번 생에는 절대로 허무하게 죽지 않을 테다.마침 배우라는 꿈도 펼칠 겸, 외숙부에게 복수할 방안이 떠올랐다.바로 할아버지가 생전 남몰래 연기자를 키워 왔다는 것.그렇게 할아버지를 내 편으로 삼고자 연기력을 안 숨겼을 뿐인데…….“나 새이 씨가 탐나요. 배우로 활동할 생각이면 내가 가르치고 싶은데.”연기파 대선배의 간택을 받질 않나,“다 가졌는데 너만 없어. 새이야, 주새이. 그래서 난 늘 허전해. 알아?”다시 만난 짝사랑 상대는 내게 반쯤 미쳐 있고,“배역으로라도 옆에 서야지. 그때만큼은 내가 네 주인공이니까.”미래의 탑클래스 배우까지 내게 꼬리를 살랑댄다!……연기력, 너무 안 숨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