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고 하셨잖아요. 떠나겠다고요.” 여주를 괴롭히다 죽는 악녀에 빙의했다. 별짓을 다해도 원작이 안 바뀌길래 그냥 현실에 순응하기로 했다. 나 편한 대로 살다가 여주가 돌아오면 조용히 떠나기로! “이제 네가 가짜 역할을 할 필요 없으니 이만 떠나거라, 이레스.” “네, 그렇게 할게요.” 속전속결로 짐을 싸서 바로 나오자, 공작가는 대역인 내가 죽었다고 발표했다. *** 처음 맛보는 자유에 술을 좀 마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어라? 분명 같이 밤을 보냈는데 왜 일어나니 나 혼자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이 거지 같은 수도를 떠나자! *** 3년 후, 오랜만에 돌아온 수도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근데 바이렌 황태자 전하는 언제까지 혼자 사실 거래?” “모르지. 이레스 황태자비 전하께서 승하하신 지 얼마나 되셨지?” “벌써 3년이야, 얘.” 이레스 황태자비……? 아니, 내가 언제 황태자비가 됐는데?
여주를 질투하고 괴롭히다가 유폐당하는 남주의 여동생으로 빙의했다. 결혼도 안 하고 오빠 여친이나 괴롭히는 것보단 내 남자 골라 결혼하는 게 낫지. 떡잎부터 괜찮은 남편 후보가 있었다. 옆집 사는 사일러스라는 녀석인데 싹수도 괜찮고 인형같이 생겼다. 이대로 인성 바른 예쁘고 참한 남자로 크기만 하면 내 남편감으로 딱이다. 그래서 코찔찔이 어릴 때부터 세뇌를 시켰다. “야, 너는 꼭 예쁘고 착하고 바르게 커서 이 누나한테 장가 와. 이 누나가 네 눈에 눈물은 안 나게 한다.” 아쉽게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사일러스가 떠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 새언니가 될 여주와도 친하게 지내고. “…테르시아. 너 대체 알리나를 데리고 어딜 갔다 온 거야!” “오빠는 몰라도 되는 곳.” “너, 알리나하고 그만 어울려.” 흥칫뿡이다. 이게 맞지. 어차피 남의 남자 될 오빠하고 친하게 지내서 뭐해. 새언니가 킹왕짱이지. 그리고 남편감 물색에도 열을 올렸다. 그러던 내 앞에. “테리. 장가오라더니, 지금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고 있는 거야?” 사일러스가 다시 나타났다. 키도 크고 완전 잘생긴 초절정 미남이 되어서. 그래서 나는 사일러스와 알콩달콩 연애를 했다.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낮이고 밤이고 행복하게. 그런데. “…네 본명이 뭐라고?” “칼리스. 칼리스 포르시테. 그게 내 본명이야, 테르시아.” …알고보니 고르고 고른 내 남자가, 내 남친이…. 우리 가문과 황실을 망하게 하는 흑막이었다. X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