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등장한 남자의 예쁘장한 얼굴로 청순하게 울어대는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에 경악한 것도 한순간, 그가 주는 낯선 쾌감에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 녹아 버렸다.한번 맛본 쾌감은 잊으려 해도 계속 떠올라 익숙하기만 했던 스킨십이 자꾸만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나 요즘 욕구불만이야.”솔직한 고백에 유혹하듯 야살스럽게 웃으며 그가 다가왔다. 욕망이 미약하게 녹아 있는 시선이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어때요? 나랑 할거죠?”마주 닿은 입술을 타고 열기가 스민 숨결이 와락 밀려 들어왔다. 목소리만으로도 희열에 몸이 덜덜 떨려 온다.아, 이러면 안 되는데…….“으응.”하지만 이성보다도 빠르게 육체는 욕망에 굴복했다.“이제 절대 도망 못 가요.”그게 어딘지 음산하고 집요한 남자가 준비한 덫이라는 건 꿈에도 모르고.
그녀가 많은 걸 욕심낸 건 아니었다. 오필리아는 그저 자라 온 가문과 영지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정략결혼을 선택한 그녀가 마주한 것은 상상보다 더 이상하고 끔찍한 현실이었다.작위를 물려주고도 전혀 힘을 놓지 않는 전대 자작 부부와 영지에는 관심 없는 남편 엘리오, 그리고 남편의 옆에 친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소꿉친구 아이비까지.주어진 현실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그녀에게 의뭉스러운 남편의 친구, 루시안 라디에트는 두려움과 혼란을 선사하는 위험한 사내였다.“여길 떠나.”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더운 숨결이 전해졌다. 마치 입술이 당장이라도 귓불에 닿을 듯 가까이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긴장감에 바짝 배 안쪽이 조여들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남자.폭풍에 휩쓸려 난파된 배처럼 어지럽게 흔들리는 그녀의 몸과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루시안.그는 과연 유일한 구원자일까, 아니면 지독한 파괴자일까?“내가 지금 그대의 상태를 설명해 볼까?”“…….”“아마 무척 불안할 거야. 속이 답답하고. 공포로 심장이 두근거리고.”오필리아는 고개도 끄덕이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를 견뎌 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무언가 잘못될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루시안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바라보며 즐겁게 입술을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