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 오만한 구원이 그에게 남긴 것은 처절한 비극뿐이었다. “카이헨. 꼭 행복해지렴.” 금기를 어겨 죽을 처지인 어린 카이헨을 살리고 수호신의 생을 끝낸 시아나. 딱히 소멸이 두렵지는 않았다. 자신이 살려낸 꼬마가 행복해진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울 뿐. 그러나 시아나는 소멸하지 않았고, 주신은 그녀에게 성장한 카이헨을 보여주었다. 복수심에 모든 것을 부수고 자결하는 폭군의 모습을. 시아나의 바람과 다르게 카이헨은 단 하루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 그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의 오만한 구원이 그에게 남긴 것은 처절한 비극뿐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못 견디게 사무친 시아나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간청했다. “주신님.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까, 이 운명을 바꿀 만큼의 시간만 허락해 주세요.” 주신은 시간을 되돌리는 대가로 시아나의 신성력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평범한 인간이 된 시아나는 성인이 된 카이헨에게 접근하고. "이것도 우연이라고 말할 생각인가?" 목에 칼끝을 들이미는 카이헨의 차가운 질문에 시아나의 두 눈동자가 더욱 또렷해졌다. ‘아니. 이건 필연이지. 오롯이 널 위해 내 소멸을 걸고 얻어낸 필연.’ 수호신으로 복귀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남은 미련은 카이헨의 행복, 그거 하나뿐. 그에게 행복을 알려주리라. 이 미련이 사라지면 그때는 정말 후련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리라. 시아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카이헨이 점차 어떤 마음을 품어가는 지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