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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를 애인이라 부르기까지

어느 봄날, 친구가 자살했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남자, 권민헌.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숫자와 똑같은 번호판의 차량, 친구의 프로필 사진에 찍힌 것과 같은 차종, 친구의 좋아요가 우수수 달린 SNS. 그 남자는 대체 친구와 무슨 관계였을까? 애써 생각을 떨쳤지만 자꾸만 이상한 곳에서 그와 마주치는데.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는 태이에게 계속 다가오는 민헌. 소중한 친구를 잃었음에도 그로 인해 다시 일어선다. “나도 다 알면서 넘어가는 거야. 그냥 네가 좋아서.” “…….” “태이야. 진심이라곤 해 줘. 난 가족한테도 이런 말 안 해.” 그가 속삭이는 다디단 말을 들으면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길게 갈 수 없는 관계인데, 인생을 다 열어 달라는 민헌의 손을 잡고 싶다. 그가 제 일상을 끊임없이 뒤엎을 것을 알면서도. *** “우태이, 내가 어디가 좋아?” 태이가 당황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자, 눈썹을 치켜올린 채 당당한 민헌의 낯짝이 보였다. “좋은 구석이 있으니까 사귄다고 한 거 아니야.”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잠시 동안 고기를 자르고, 파프리카, 양파, 버섯까지 쏟는 소란 속에서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마침내 태이가 치익 소리 사이로 중얼거렸다. “귀여워서.” “뭐?” 저렇게 윽박지르는 사람한테 또 얘기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불을 줄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귀여워서 사귀자고 한 거야.” 세속적인 세상에 누구보다 익숙할 텐데도 은근히 겁이 많고, 친절하다가 갑자기 미친 짓을 저지르고, 애교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제 욕심대로 쩨쩨해졌다. 요약하자면 방어적이고, 제멋대로였다. 못된 특징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솔직했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귀엽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귀여워?” 바보같이 중얼거리는 게, 귀엽잖아. 일러스트: 서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