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복수를 위해 나를 이 진창으로 밀어 넣은 것을 알아요.” 아가타의 말에 프란치스코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게 프란치스코 당신의 숨겨 온 본모습인가요?” 승승장구하던 가문의 몰락으로 홀로 남겨진 불쌍한 아가타 디오르. 파산이 결정된 순간 책임감 없이 죽어 버린 부친을 둔 안타까운 아가타 디오르. 불행한 수식어를 가진 그녀에게 프란치스코 샤르페는 낙원을 선물한 구원자였다. “멍청한 동화 속에 사는군.” 그래서 설마하니 그 사람이 저의 가문을 망가트린 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생 좋은 것만 보느라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모르는 그대의 아둔함이 잘못이지.” 프란치스코가 아가타의 턱을 움켜쥐며 싸늘하게 웃었다. “낙원에 온 것을 환영해, 아가타.” 아가타는 그제야 알았다. 프란치스코와 자신은 원수지간이란 것을. 그리고 그런 그를 온 마음을 바쳐. 함부로 사랑해 버렸다.
날것의 눈빛을 가진 남자는 건들지 말아야 한다.정혁, 그 남자는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남자였다.“한태우는 알까?”그런데 어쩌다 그런 남자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된 걸까.“채로아가 내 밑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짐승, 그래, 그를 보면 전혀 길들지 않은 야생의 짐승을 떠올렸다.그리고 나는 안다.“아직도 그걸 모르다니, 한태우도 참 불쌍해, 안 그래?”그 짐승이 어떤 체온을 가졌는지.“채로아는 한태우 약혼녀인데 말이야.”그 체온이 얼마나 자극적인지.“로아야.”“…….”“또 내 밑에서 예쁘게 울어 줘.”난 그 체온에 이미 길든 후였으니까.
“말 못 하는 하자품과 노예에게서 난 천것의 정분이라니, 이런 촌극이 또 있을까!” 하자품. 그것은 바로 제 딸, 브리아나를 향한 멸칭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촌극이 될지 역사가 될지는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숙부님.” 제가 죽음으로 몰아넣은 조카, 아나스타샤가 딸자식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 * * ‘아나스타샤, 부디 이 파란에서 멀리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 주렴.’ 저로 인해 형장으로 끌려가던 어머니의 당부. 하지만 어머니, 전 이렇게 덧없이 사라지고 싶지 않아요. 저는 기꺼이 폭풍이 되겠어요.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그런 거대한 폭풍이 되어. “저들을 제 손으로 심판하겠어요.”
짝사랑하던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 그래서 도망쳤다. 홀로 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그런데. “대리모라고 생각할게요.” 자신을 그 남자의 약혼녀라고 소개하는 여자가 채아를 찾아왔다. “아이 낳아서 몸 망가지는 거 싫었는데…….” “…….” “채아 씨 같은 대리모를 얻은 덕분에 고민 덜었어요.” 저를 대리모라고 칭하는 그녀를 두고, 채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에게도 가진 것 없는 천한 엄마보단, 나같이 능력 있는 엄마가 나을 거예요.” 그녀의 말처럼, 저는 천하디, 천한 천것에 불과했으니까. ▶잠깐 맛보기 거칠게 숨을 내몰아 쉬는 수혁의 눈빛은 차가웠다. “수채아.”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채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돌아가세요. 여긴 교수님이 계실 곳이 아니에요.” “…….” “다신 찾아오지 마세요.” 채아가 차갑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그래,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지. 그런데.” 채아의 손목을 붙잡은 수혁의 두 눈빛에 광기가 가득했다. “내 아이를 가진 여자가 있을 곳도 여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