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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시한부라도 과보호는 싫은데요

평생을 원수의 개로 살았다. 어머니의 복수를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다. 그토록 염원하던 복수를 앞둔 날,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의 몸에 빙의했다. 그렇다. 이것은 지독한 저주였다. [저주의 영향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무수한 ‘불행’들이 쏟아집니다.] 헛것 같은 알림창이 시야를 뒤덮었다. [유감입니다.] [당신에게 ‘지옥 같은 불행’이 닥쳤습니다.] [굶주린 마물 아트라가 당신을 먹잇감으로 인지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괴물에게 정신없이 쫓겼다. 그야말로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한 순간, 그를 만났다. 칼릭스 프레 세다투스. 이 몸의 약혼자이자, 과보호에 진심인 그를. *** “너무 차가운 물은 몸에 좋지 않아.” “됐어요, 원래 더운 날에는 찬물이 최고….” “따뜻한 차를 내와. 재스민이 좋겠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어떤 관심도, 보호도 필요치 않았다. 나의 목적은 오직 단 하나. 원래 세계로 돌아가 복수를 끝마치는 것뿐이었다. 분명히 그랬건만. “티아벨. 그대와 떨어져 있는 모든 시간이 지독하게 허무히 느껴질 정도로…… 상실감이 들었어. 내 말을… 이해하겠나?” 이건 두려움일까. 긴장감일까. 불안감일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격렬한 떨림에 시선이 고꾸라졌다. “글쎄…요. 난… 모르….” “간단해. 내가 그대를 마음에 품었다는 뜻이야.” “…….”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 티아벨.” 그에게 흔들리고 말았다.

여섯 번째 남편이 죽은 첫사랑이었다

네 번. 10년간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위해 사고 팔린 횟수였다. 이 치욕이 다섯 번이 되던 날, 그를 만났다. “셀리아.” 여섯 번째 남편은 전 남편들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을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나를 부정했다. 흡사 길거리의 오물을 보는 듯한 눈빛은 경멸의 방증이었다. “애당초 베르세이크에 저따위 물건이 들어온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거늘.” “진짜 기분 나빠! 당신처럼 더러운 여자가 만져도 되는 물건이 아니란 말이야!” “핏물이 빠진 네 얼굴도 봐줄 만할 거야. 아, 박제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전쟁터로 떠난 그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어떤 모욕과 치욕도 견딜 수 있었건만. 돌아온 남편은 혼약서를 갈가리 찢어 불쏘시개로 던졌다. “자, 이제 그대는 자유의 몸이야.” 자신에게 처음으로 온정을 베풀어 준 남자. 그는 어디로든 가라고 말했으나 죽기보다 싫은 선택지였다. 셀리아는 생애 처음으로 '용기'라는 객기를 부렸다. “……이대로 당신 곁에 있어도 괜찮을까요?” “정신 나간 소리, 여기 남아서 나랑 같잖은 사랑놀이라도 할 셈이야?” “사랑놀이…… 그런 것을 좋아해요?” “뭐?” “당신이 원한다면 노력해 볼게요.” 그러나 이때는 알지 못했다. 여섯 번째 남편이 죽은 줄로 알았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그의 친모를 죽인, 원수의 딸이라는 비극적인 진실도. 이 모든 걸 알고도 저를 사랑해 온 남편이 정작 사랑의 결실인 아이는 원치 않으리라는 미래도. 마침내 잔인한 현실을 직면한 날, 셀리아는 배 속에 아이를 품고서 남편의 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