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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잔은 붙지 않는다

“네가 나 대신 전쟁귀의 신부가 되어야겠어.” 몰락한 가문 탓에 요하네스 공작가의 하녀로 일하던 유이스 에버렛. 모시던 공녀의 변덕으로 정략혼의 제물이 되고 만다. 상대는 먼 북부 제국의 공작, 전쟁귀 에드릭 데카르트. 전장도, 침실도 핏빛으로 물들이는 걸 좋아한다는 무서운 남자였다. 조국의 평화를 위해, 부모님의 안녕을 위해 칼랑으로 향했지만 뜻밖에도 남편은 무척 고귀해 보이는 미남자였다. 불안했지만 행복했다. 깨진 유리 위를 걷는 것 같았지만 처음 느껴 보는 든든한 울타리에 그만 욕심을 내고 말았다.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날 줄도 모르고. “내 아내로 살아, 내가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울어. 네 말대로 헤타르의 왕녀와 혼담까지 놓친 마당에 네가 그걸 무슨 수로 보상하겠어?” 싸늘한 에드릭의 말에 유이스는 인형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생겨 버린 마음은 하릴없이 그의 작은 말 한마디, 옅은 미소에 흔들렸다.  유이스는 남편을 향한 죄스러운 사랑을 홀로 삼켜 냈다. 모든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 * * 떠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떠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감히 그런 기대를 품었다. “안녕, 유이스. 데리러 왔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인사에 유이스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희미한 미소가 걸린 에드릭의 얼굴을 본 순간 깨달았다. 유이스 에버렛이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게 향하는 모든 빛을 쥐고

가문을 위해 버린 첫사랑이 3년 만에 돌아왔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가문과 귀족의 긍지를 모두 잃기 직전에. 브뤼히 제국의 천국이라 불리던 브란테 저택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서. “괜찮아요, 엘리아나.” 엉망으로 무너져 내린 엘리아나의 앞에 선 남자는 괜찮다고 말했다. “우린 이 지옥 속에서 영원히 함께할 겁니다.” *** 테오도르가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남은 생을 그의 정부로 살 것. 하지만 엘리아나 폰 브란테는 브뤼히 제국의 가장 고귀한 숙녀였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저와 결혼을 하시는 건 어떤가요?” “영애께서는 정말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그와 서로 사랑하는 척 허울뿐인 결혼을 했다. 그것이 그를 버린 제 속죄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속죄였던 결혼 생활이 이상할 만큼 가슴을 술렁이게 했다. “우리는 결혼한 부부입니다. 그것도 서로를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죠.” “그럼 우리가 밤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대로 굳은 테오도르를 향해 엘리아나가 의문을 드러냈다. “제 말이 틀렸나요?” “그런 말이 지금 어떻게 들릴지 알고 말을 하는 겁니까?” 짙은 정염에 휩싸인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와 닿았다. “이제 정말 못 참겠는데.” 3년 전 뜨겁게 밀애를 나누던 그 시절처럼. <2024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 로판 우수상 수상작> * 표지 일러스트: 플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