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해
여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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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동화가 산다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 이름 들어도 모를 촌구석, 시골 마을에 서울에서 살던 소녀가 내려왔다. 농아였다. - “마! 거기 들어가면 안 된다고!” 잡은 손길을 따라 뒤돌아보니 내 또래의 남자아이가 미간을 좁힌 채 서 있다. 키가 크고, 두툼했다. “계속 말렸는데 니 왜 자꾸 들어가려고 하는데?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초면…… 아닌가? 왜 계속 화를 내지. 그러다 떠올렸다. 아. 처음 보니까 내가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겠구나. 잠시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한 뒤 볼펜을 들어 수첩을 넘겼다. 열심히 끄적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하게 웃으며 수첩을 들이밀었다. [미안. 나 귀가 안 들려. 다시 말해줄래?]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

“날 사랑한다고 말해. 어서.”갑작스럽게 피폐가 한 스푼 첨가된, 최애 로맨스 소설 <약혼자의 무게>에 빙의하고 말았다.집착하는 약혼자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다가 감금당하는 여주인공 ‘유수영’으로.[지금 이 소설 다섯 번째 정주행 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주인공이 답답해서 댓글 남겨요.]그저 솔직한 심정을 댓글로 달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관리자입니다. 댓글은 잘 읽었습니다. 다섯 번째 정주행 중이라니, 많이 읽었더군요.]관리자 댓글이 이어서 달렸다. 기회는 딱 다섯 번이라고. 그리고 현재. 수많은 시도 끝에 다섯 번의 기회 중 단 하나의 기회만 남았다.지겨운 약혼자를 놓아주고 내 삶을 살아가고 싶지만, 아무리 도전해도 결말은 같았기에 방법이 없었다.‘이제 너무 지치는데 내보내 주면 안 돼요? 답답하다는 거 취소할게요. 네?’끝없는 불행에 자포자기한 순간이었다.“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수영아, 나 알아보겠어?”소설 속,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던 오빠 친구 ‘채강우’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나를 이용해.”채강우가 말했다. 자기를 이용하란다.“사랑해. 예전부터 그 말이 하고 싶었어.”그저 담담하게 고백했다. 내가 무사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