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대답해. 내 아이인지 물었어.” *** 레칸토 제국에서의 생과 21세기 대한민국에서의 생을 거쳐, 다시 첫 번째 생으로 회귀한 제국의 황비 에스텔. “당신이 나를 사랑할 리 없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이번 생에는 황제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던 카이안을 떠나기로 했다. 모든 삶을 통틀어 가장 후회한 것이 그를 사랑한 일이었기에. 이번 생의 목표는 단 하나. 지난 생에 잃었던 아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위장하고 그의 아이를 품은 채 도망쳤다. 모든 게 완벽했다. 다시 만난 아이는 사랑스럽고 애틋했으며, 지난 생의 지식으로 막대한 부를 이뤘으니.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난 그대도, 아에르도 이곳에 두고 갈 생각이 없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상관없어. 그대가 내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4년 만에 우연히 마주한 전남편이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은 척 연기했음에도. 그래서 직감했다. 그는 결코, 이 악연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이미 나를 버린 당신에게 다음 기회 따위는 주고 싶지 않았다.
“이 엄마가 네 남편의 아이를 가졌단다.” ⠀ 내가 목숨보다 사랑한 남편의 내연녀는, 나의 천사 같은 새어머니였다. “축복해 주렴.” 그녀는 가장 찬란한 미소로 내 마음을 난도질했다. “제국의 황후 자리에는 두 번이나 내 아이를 가진 사밀라가 훨씬 잘 어울려. 너 같은 석녀 따위가 아니라.” 심지어 둘 사이에는 이미 몇 년 전 태어난 사생아가 있었다. 내 아버지의 유복자인 줄 알고 가문의 후계자 자리를 내어준 이복동생이었다. 아버지의 목숨, 내 신성력, 가문의 상속권까지 모두 빼앗겼다. 그렇게 쓰임을 다하고 독살당한 뒤, 결혼하기 2년 전 약혼식 날로 회귀했다. 그날 밤, 새어머니와 남편의 밀회를 보며 다짐했다. 이번에는 가문을 지키고 너희에게 파멸을 선사하리라. 너희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지옥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