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혼에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셀리나는 졸도할 것 같은 심정으로 예식장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그녀를 '후작이 애지중지하는 보물'이라 불렀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줄곧 외딴 섬에 갇혀 살았으며, 죽은 듯이 살아가던 애물단지였다. 이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된다. 셀리나는 살얼음판을 내딛는 기분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고, 그 길의 끝에는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가 서 있었다. “차라리 후작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왔노라고 사정해 봐.” 제국의 적이자 탈리아의 태양이라 불리는, 칼릭스 사일러스. “그럼 내가 영애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라도 당신을 택할지 모를 일이니.” 그는 이 결혼을 원치 않았고 후작의 딸인 셀리나를 증오했으나, “꼭 데리러 돌아올게.” 하지만 셀리나는 오래 전,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셀리나를 차갑게 응시하는 저 사내는 과거 그녀가 목숨을 구해준 뒤 오랫동안 마음 속에서 품어왔던 소년이었으니까. 그녀는 이 증오가 사랑으로 바뀔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셀리나가 후작의 명을 받았을 때. “칼릭스를 죽이기 위한 약점을 찾아라.” 그녀는 차라리 자신의 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