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토리
김도토리
평균평점
늪에 갇히다

“그 새끼 말고 나랑 해, 결혼.” 죽기보다 싫은 정략결혼을 앞두었을 때. 잊었던 옛사랑이 찾아왔다. “왜 저랑 결혼하려는 거예요?”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거든.” 이은의 물음에 태준은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는 와인 잔의 늘씬한 목 부분을 느릿하게 매만졌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뒤엉켰다. “설이은에게 버림받던 그날을.” 태준이 힘주어 와인 잔의 목을 움켜쥐었다. 마치 그의 손아귀가 이은의 목을 향하는 듯했다. 챙강, 기어코 와인 잔의 목이 깨어지고 말았다.

비형 로맨스

‘예림아, 그 사내를 조심해라. 그놈이 찾아오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야 한다. 알았지? 절대 그놈과 엮여서는 안 돼.’살아생전, 할머니가 예림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던 말씀이셨다.하지만 예림은 기묘한 인연으로 ‘그놈’과 얽히게 되고 만다.* * *눈앞에 그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새빨갛게 타오르며 일렁거렸다. 찰나였지만 모든 게 느려지는 순간, 예림은 남자의 눈동자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남자가 예림을 향해 길쭉한 팔을 뻗었다. 자신을 붙잡으라는 듯이.머릿속에 할머니의 당부가 떠올랐지만, 지금 예림에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남자의 손을 붙잡는 것밖에는. 예림이 남자의 팔을 맞잡는 순간,그가 중력에 반하는 무서운 힘으로 예림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