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붙어 있다고 살아 있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모두를 잃고, 눈만 뜨고 있으면 무사한 것입니까?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주. 단지 죽지 못한 것뿐이겠죠. 그런 삶은 죽음만도 못해요.모두를 잃고 지옥을 걸어온 자, 현북의 땅주인, 양섭성.살아남기 위해 원한을 가슴 깊이 묻고 원수를 땅에 들이다.내가 네 행복, 기쁨, 안온, 그 모든 것들을 갈가리 찢어 저 지옥에 처박았어. 바로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거짓된 맹목에 사로잡힌 자, 평해의 폐주, 기해.복수를 위해 제 발로 짓밟은 원한의 땅에 들어서다.죄 몰라 엇갈린 연, 엇나간 마음네가 사랑일 리 없는데.네가, 사랑이어서는 아니 되는 것인데.“네게, 세상이라도 주고 싶어졌다. 어찌하면 좋으냐?”이곳은 나락의 끝이며 천계의 시작인 땅.차갑고 황량한 제국, 황야.천계의 아홉 천존이 친히 세운 이 나라의 천지에는 구분이 없어, 나락의 요괴와 지상의 술사가 경계 없이 들끓었다.*표지 일러스트 : 꽁
“저는 무엇입니까?” 이미 희미해진 혈통,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밤을 척살하는 자, 권명. 가문이 몰살되고 복수를 갈망하던 중 그 계집, 사현주를 만나다. “너는 내가 고른 것이다. 버리지 않으니 심려 마라.”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나 아비의 증오 속에 자라난 버려진 밤의 일족, 사현주. 차가운 생의 길에서 단 한 번의 온기를 갈망하다. “어떤 상황이라도, 제가 무엇이라 해도 저를 특별히 여기실 겁니까?” 아무도 믿지 못해도 너만은 믿을 수 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너만은 얻고 싶었다. 너는 내 하나뿐인 목숨, 영원을 함께할 반려. “소중히 여기기로 결정해 버렸는데 어찌하겠느냐?” 너를 두고 어디도 가지 않으리. 설령 곁에 있지 못하게 한들 떠나지 않으리. 지금 이곳은 우리가 만난 밤, 창백한 나락-
“전하…….”수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들었다. 도는 그녀의 무례를 탓하지 않았다. 서럽게 웃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아니 되는 걸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무엇이 아니 되는 것이냐?”“전하께서 아무리 노력하셔도 이곳에서 제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곳엔 그에 대한 기억이……. 운에 대한 기억이 너무 많습니다. 어딜 가든 그와의 기억이 있습니다. 어딜 가든 그의 목소리가 들리옵니다. 미움은 자꾸 흐려지고 그리움은 자꾸 깊어져 종래는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를 원망했던 날을 후회하고, 그를 사모했던 날을 후회하고, 그를 미워했던 날을 후회하고, 그를 믿었던 날을 후회하고……. 끝내 전하의 편에 서 그에게 등 돌린 일조차 후회하고 말 것입니다.”그녀 손으로 버린 연이 이곳에 있다. 그녀 손으로 내친 연이 이곳에 있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다 끝내 놓아버린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개정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