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의해 산속에 살고 있는 양치기에게 가정부로 팔려 간 소녀. 어리숙한 여자와 무뚝뚝한 남자의 산속 생활과 그 속에서 흘러가는 사랑 이야기. ===========================================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산 중턱은 아주 가끔 방문하는 스미스 씨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없다. 양 떼를 몰거나 시내로 나가는 게 아니면 하루 종일 단둘뿐이었으나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함께 지낸지 꽤 시간이 흘러 내 스물한 살 생일이 몇 달 남지 않았을 때까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법도 잘 없었다. “안나.” 그래서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조금 놀랍고 어색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듯 무뚝뚝한 어투가 아니라 매우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다녀올게요.” 남자가 말하며 배웅하는 내 어깨를 잡고 볼을 맞대었는데 나는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 딸꾹질을 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맞닿았던 간지러운 피부 감촉과 어깨를 잡은 손길이 계속해서 머물러 느껴지는 듯했다. 남자의 행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 풀어 헤쳐진 머리를 묶어 주고는 훤히 보이는 뒷목을 조심스럽게 매만지고 칠칠치 못하게 넘어져 무릎이 까진 날에는 약을 발라 주며 종아리를 쓸어내렸다. 같이 잠을 잘 때는 내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 주며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허리까지 타고 오는 간질거림에 킥킥거리며 웃어 댔다. 그럴 때마다 남자도 따라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