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죽음 이후, 8년 만에 잠시 한국으로 돌아온 연오.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대기업의 외손녀이기도 한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잠입이라니요?” 시시각각 기밀문서를 탐내는 경쟁사의 계약직원으로 몇 달간만 잠입해달라는, 아주 간곡하디 간곡한 부탁. 그리고 그곳에서 그저 낯설지만은 않은 한 남자, 다한을 처음 만난다. 피할 수조차 없는 연오의 상사로서. *** “왜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지?” “…….” “알아보지도 못할 거면서, 왜 사람 마음을 멋대로 헤집고.” 처음 보는 다한의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꼭 예전부터 연오를 잘 알아 온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사실 그보다 이상한 건, 그런 다한이 싫지 않다는 거였다. “지연오.” 이윽고, 다한의 붉은 입술 새로 튀어나온 그녀의 이름에는 잔뜩 물기가 배어있었다. “……많이 취하셨어요.” 연오는 알고 있었다. 정말 취한 사람은 오히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은 자신이라는 것을. 어쩌면 다한보다도 몽롱해진 채였다. “먼저 파고들어 온 건, 네 쪽이야. 그러니 도망칠 생각 마.” 마치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