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버린 상사를 다시 만난 소감 어떻습니까?” 하룻밤으로 불과할 줄 알았던 인연이 상사가 되어 나타났다. 고아 취급에 하대받는 신세인 여자. 남자가 자신에게 선을 긋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랬는데. 고작 하룻밤 안아 본 여자에게 쏟아지는 갈증. 윤언그룹 2세이자 불굴의 철벽을 자랑하던 정언은 충동적으로 연우에게 무모한 제안을 한다. “기한은 내가 충족할 때까지, 몸을 섞는 것. 내가 만족할 때까지 채연우 씨를 놔주지 않아도 괜찮은지 묻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 “네. 후회 안 해요.” 남자란 패가 연우의 손에 쥐어지자 그간의 서러웠던 감정들이 유실했다 돌아온 기억처럼 떠올랐다. 남자는 기서라가 가지지 못한 것 중 연우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 “걱정할 거 없어요.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해보면 금방 적응될 거예요.” 팽팽하게 당겨진 넥타이를 쥔 연우의 손목을 정언이 거세게 움켜쥐었다. 넥타이가 연우의 손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스치고, 정언의 손길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묘한 긴장감이 공기 속에 가득 찼다. “벗기거나 조이거나 둘 중에 하나만 잘해도 되거든.” 그 순간 정언이 의연하게 억누르던 욕망의 빛이 번지며 돌변했다. 단 한 번 거스른 충동의 끝이 충족이 될 줄은 몰랐다.
“저는 어차피 해야 하는 결혼일 텐데 피할 생각 없어요.”첫인상부터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자식까지 잃은 마당에 조부는 ‘우경’ 자신의 결혼까지 제 뜻대로 휘두르고 싶어 했다.하지만 고르고 고른 게 자식이 없던 유 대표가 재혼한 아내를 통해 데려온 여자였다.이쯤에서 결혼이니 뭐니 정리하자고 말을 꺼내려던 우경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그래서 말인데 이혼은 언제쯤 해 주실 건가요?”이혼부터 대뜸 얘기를 꺼내자 도리어 당황한 우경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방긋 웃으며 덧붙였다.“물론 먼저 해 주시는 것도 차우경 씨 맞죠?”그 순간 차우경은 유이연을 향한 호기심에 불이 붙어 버렸다.그리고 그게 사랑이 될 무렵 끝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오랜만이야. 유이연.”삼 년 전 이혼했던 전남편인 차우경이 이연이 일하는 로펌 계약직 변호사로 왔다.거기에 술김에 저지른 낯선 남자와의 실수가 바로 ‘그’라니.태연한 얼굴로 그가 건넨 쇼핑백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건 이연이 아침에 놓고 나온 속옷이었다.“차우경 씨 설마 우리 어제….”직접적으로 잤냐고 묻기 머쓱해 우물쭈물하던 이연의 옆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내린 우경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기억 안 나면 기억나게 해 줄까?”그의 눈동자가 이연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 내더니, 이내 아래로, 입술로 천천히 옮겨 갔다.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내가 여기 오겠다는 조건은 딱 그거 하나였어. 유이연이 내 파트너가 되어 주는 조건.”자신이 파트너가 되어 주는 조건으로 계약직이란 자리를 허락했다고?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꼭 정율이 아니라도 우경의 스펙이면 대형 로펌에서 데려가려 안달 났을 텐데.고작 자신 때문에 계약직 자리로 온다고?그 순간 이연은 비참했다. 한때 우경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법률을 의미하는 저울 달린 금배지를 자신이 달고 있을 줄 알았으니.우경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감정일 텐데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좋은 자리 놔두고 차우경 씨가 왜 계약직 자리를 맡아요? 맞는 자리로 돌아가요.”이쯤이면 말뜻을 이해했겠지 싶어 이연이 등을 보였다. 하지만 등 뒤로 예상치 못한 다부진 말이 들려왔다.“안 될 건 뭐야. 나인 줄도 모르고 어젯밤 매달리던 너도 있는데.”“차우경 씨 그건….”“그게 답 아니야?”그때는 몰랐다. 그간의 결연한 마음도 우경 앞에서는 허물어지고 말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