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새끼가 또 사달을 냈구나. 늑혼 8년. 해마다 질리지도 않고 산을 어지럽히던 남편이 이번에는 상서로운 불여우를 잡아와 산 채로 가죽을 벗겼다. 그 뒤 하루, 여우가 완전히 죽고 온 마을이 고요해졌다. 사흘, 세상에 천벌이란 없는 듯 남편은 희희낙락했다. 닷새, 마을의 봉분이 훼손되고 방내 우물물이 붉게 물들었다. 여드레, 개 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본촌에 짐승 누린내가 짙었다. 이윽고 붉은 머리칼의 한 사내가 나타났다. “내 아내를 죽인 놈은 어디 처박혀 있으신가?” “녹산의 여식 이아가 여우님께 고하오. 목숨은 목숨으로 갚는 것이 온당할 터. 나는 그대가 찾는 청가 영좌의 아내이니, 원컨대 가솔들을 더는 해치지 말고 날 죽이시오.” 활줄生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이니 두려움도 미련도 없다. 그러나 교활한 여우는 이아가 죽은 듯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대가 날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여우님이 내게 도움을 구할 일이 무어가 있겠소.” “그대 남편.” 호량하가 악독한 웃음을 머금으며 다가왔다. 가까워진 거리는 손톱뿐이 아니라, 매끈하게 잘생긴 얼굴이 차차 이아의 입술을 향했다. “그대가 내 여인이 되면, 가장 통렬한 복수가 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