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 필호와의 원치 않은 결혼을 앞두고 은수는 파리로 향한다.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던 파리의 마지막 밤. 은수는 우연히 만난 태석에게 말했다.“오늘 저와...하룻밤을 함께 해주세요.”흑요석처럼 까만 눈동자는 결심에 찬 듯 굳세어 보이면서도, 작은 바람에도 금세 흐트러질 것 같이 연약했다.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담담한 척하려 하고 있지만, 작고 가녀린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은 조금만 살펴봐도 금세 눈치 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자신에게 반하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을 유혹하는 여자. 태석은 그녀가 궁금해졌다.“좋아. 들어가지.”타지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의 뜨거운 하룻밤.단지 하룻밤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인연은 한국에 와서도 계속 되는데..
“저와 결혼해 주세요.” 나이 차이만 아홉 살,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세이는 맞선 자리에서 만난 민혁에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결혼을 요구한다. “윤세이 씨는 나랑 결혼하고 싶습니까?” “네.” “그쪽과 나는 아홉 살 차이입니다.” “그게 어때서요? 법적으로 문제라도 되나요?” 나이가 믿기지 않도록, 차분하고 당돌한 그녀의 태도에 당황하는 민혁. 결국 둘은 집안의 이익과 서로의 필요에 의해 결혼을 진행한다. 없는 듯이, 인형처럼 살아가겠다던 세이는 결혼생활 내내 조용히 민혁의 곁에 머문다. 민혁은 늘 어른스러운 척 행동하는 아내에게서 호기심과 연민을 느끼고, 그녀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 또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내의 존재가 민혁의 가슴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자리 잡아가던 어느날,그녀가 말했다. “이혼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