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날 때를 아는 여자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론즈 가문의 반푼이, 만들어진 공녀로 자라 결국 왕비의 자리까지 꿰찼으나 약조한 기간 내에 아이를 갖지 못하여 결국 폐위될 비운의 여인. 한때는 그녀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론즈 공작을 닮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역한 감정이 불쑥 치밀어 그녀에게 화를 토하곤 했다. 그녀에게 쏟아내는 멸시와 경멸이 그 어느 것보다 쉬운 때가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떠나기 전까지. *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나를 구했다고요. 왜 그 모진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냐 이 말입니다!" 그러나 라이든의 외침은 그녀에게 닿을 수 없었다. 기억을 지운 그녀는 그 따위는 전부 잊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에이릴 론즈는 더 이상 형님의 아내가 아닙니다. 제 약혼자이지요." 멍청히 그 말을 듣던 라이든 브루하일은 다시 한번 바다에 빠지고 싶었다. 그리하면 에이릴이 제 곁으로 돌아올 것 같아서. 다정한 그녀라면 자신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것만 같아서. 이번에는 자신을 구하는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할 테니까……. 라이든은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으며 끊임없이 소망했다. 저 물살을 헤치고 내 손을 잡을 이가 꼭 너이기를.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리 바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