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시에서 제일가는 외식업체, 명화의 장녀 세화. 외도를 일삼던 아버지와 집안을 건사하고자 일에 몰두하는 엄마. 동생을 돌보고 일손을 도울수록 커지는 책임감과 기대 어린 시선에 지쳐 가던 그녀는 엄마가 정해 준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로 들어온 혼담. 상대는 남평시 대지주인 권 회장의 막내아들이자 청선재의 후계자, 권윤학이었다. 비상한 머리와 타고난 사업가적 기질, 완벽한 외형. 그리고 1년 만에 이혼하고 돌아온 이혼남인 그는 세화의 첫사랑이었다. 원치 않는 혼담에 애인과 야반도주를 하려던 동생을 대신하여, 세화는 이것을 기회로 삼고 맞선에 나간다. “진짜 결혼 생각이 있군요?” “네, 맞아요.” 가늠하는 듯한 시선에도 세화는 아랑곳없었다. 그렇게 엄격한 혼전 계약서로 맺어진 두 사람. 저를 건드리지 않는 윤학에 애가 탄 세화가 그를 자극하고, 윤학은 아내에게 눈을 뜨는데…. *** 여자의 몸은 신비로웠다. 무슨 살이 그 따위로 보들보들한지. 활동은 하나도 안 하는 사람처럼. 달짝지근한 살 냄새는 또 뭐고. 모든 여자가 다 그렇게 부드럽고 달진 않을 거 아냐. 진짜 스물여섯 맞나? 윤학은 피우던 담배 불씨를 튕겨서 꺼트리고 두 동강 내어 버렸다. 이제는 안다. 명세화가 말할 때마다 왜 실밥이 간질이는 것처럼 거슬렸는지. 헛웃음이 터지고 자괴감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