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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원한 적 없었다

“이혼해 주세요, 대공 전하.” 갑작스레 내려진 시한부 선고. 그것이 바로 리에나가 삼 년간 이어진 쇼윈도 부부 생활을,  지난하던 제 짝사랑을 끝내기로 결심한 계기였다.  “전하께는 이제 제가 더 이상 필요 없으실 테니까요.” 제가 필요 없을 거라는 말도 빈말이 아니었다. 과분한 자리였고, 어차피 자신은 그저 작위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존재였으니. “내가 굳이 이혼이라는 리스크를 질 이유가 없지. 아무것도 아닌, 겨우 너 따위를 상대로.” 비록 그렇게 해서 돌아온 것은 이혼이 아니라 제게 씌워진 오명과 결혼 무효 선언이었고, 심지어 궁을 떠난 후 마차 사고를 당해 제가 죽었다는 헛소문까지 퍼졌지만 그래도 리에나는 괜찮았다. 어차피 죽을 목숨, 이대로 사라지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리에나.” 도망치듯 몸을 숨겼던 곳에서, 제 전남편과 재회해 버릴 줄은 몰랐다. “죽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군.” 심지어 제가 그를 속이고자 일부러 마차 사고를 꾸몄다는 끔찍한 오해를 받게 될 줄은, 더더욱. * * * (본문 중) “하. 진짜 시한부인 쪽이 오히려 네겐 더 나았을 수도 있겠군.” “……무슨 말씀을.” “그렇다면 불쌍해서라도 시골에 요양쯤은 보내 주었을 텐데.”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에 내내 침착했던 리에나의 눈빛이 복잡하게 엉켰다. “뭐, 그럼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시골에 처박아 두면 알아서 사라질 테니까. 아쉽네, 차라리 네가 진짜 불치병에 걸렸으면 너도 나도 편하고 좋았을 것을.” 단테는 말끝에 냉소적인 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리에나의 마음을 날카롭게 할퀴어 댔다. 가슴이 아프게 조여 왔다. 색색 숨을 내뱉던 리에나는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욱신거림은 제 병으로 인한 통증이 아니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사나운 금안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리에나는 이윽고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일부러 자신에게 상흔을 입히려는 말임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러게요. 차라리 제가 당장 죽는 게 전하께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