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숙모를 제게 빌려주시죠.” 고요한 방 안을 낮고 깊은 목소리가 가로질렀다. 아, 내가 결혼한다는 건 바로 이 남자의 숙모가 된다는 뜻이구나. 희온이 생각했다. 묘한 절망이 일었다. 아버지의 사고로 빚을 떠안아 결혼을 강요받는 나날. 발이 묶인 여자 반희온 앞에 나타난 예비 신랑의 조카 서무건. 그런데 남자는 7년 전 갑자기 사라진 옛 연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가 한달간의 기억이 없습니다.” "......." “그쪽이 얘기하는 그 남자가 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한 여름을 온통 앓게 한 사랑이었건만, 남자는 희온과의 기억을 쉽게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왜 저 눈빛만은 모든 걸 아는 사람처럼 익숙한지 모를 일이었다. 전부 지워 버린 사람인데. 더 이상 만나지 않길 바란 건 헛된 희망이었을까. 그는 희온에게 기억을 찾는 걸 도와달라며 접근한다. “다시 만나서 정말로 반가워요? 난 숙모가 진심으로 반가운데.” “그때의 나는, 아니 당신이 착각했다는 그 남자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무리 밀어 내도 그만큼 더 다가오는 남자가 희온은 두렵기만 하다. “재미있는 얘길 하네. 너와 내가 어떻게 남이 돼. 희온아.” 과연 이 남자의 진짜 목적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