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리넬
디오리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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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사정

“여전하네. 연민 자극하는 꼴은.” 해나는 11년 만에 나타나 비아냥거리는 남자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상처만 남기고 떠난 남자를 웃는 얼굴로 맞이할 순 없었다. 게다가 그는 외형도, 배경도 모자라 이름까지 바꾼 상태였다. “꽃밭에서 놀라고 했는데 여전히 쓰레기통이고.” 저속한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성격까지. 모든 것이 변했다. 웃고 떠들며 나란히 걸었던 과거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려진 지 오래였다. 텅 비어버린 그 자리엔 아물기도 전에 가시가 돋았다. 해나는 오만해진 그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모든 것이 변했으니 모르는 사람이 맞았다. 그렇게 되뇌며 그를 도려냈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할게. 입주 가사 도우미.” “대신 업무 외에 아무것도 묻지 말았으면 좋겠어. 라포형성없이 그냥 채권자, 채무자 사이로만 있길 원해.” 구렁텅이 속에서 살아온 해나는 돈을 갚아야 했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완벽하게 변한 그의 앞에선 자존심도 초라하게 무너졌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 근데 잘 숨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 “이젠 네 숨소리만으로도 찾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