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수치, 사생아, 유일한 베타. 황태자의 노예, 잡종 개. 전부 나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가족들은 나를 껄끄러워했고 사랑하는 이는 나를 단순한 체스말로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나의 죽음에도 모두 무덤덤할 줄 알았건만…. 나의 장례식에서 케이언 형님은 콧물을 흘리며 울었고, 제인 누님은 전하를 죽일 듯 노려보았으며, 다리안 형님은 나의 시체를 되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무엇보다 믿기 힘든 건, 나의 사랑을 알고도 웃어넘겼던 전하가 나의 시체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는 것이다. 다들 왜 이러시는 겁니까? ****** “티엘.” 환청이 아닐까 싶은 작은 목소리였다. 그 미약한 파문이 심장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나를 온통 헤집어 둔 음성은 거기에서 끊기지 않았다. “티엘, 어디에 있는지 대답해야 내가 찾아가지.” 죽음과 슬픔을 휘두른 것 같은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꿀이 흐르는 것 같은 그 음성에 홀린 듯 답하고 말았다. 뱉어서는 안 되고, 뱉어도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여기에 있어요.” 광폭하던 전하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흐릿한 시야에 흐린 빛이 점멸한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손을 뻗어 그분이 잡고 있는 검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 같던 전하께서 그대로 손을 펼쳤다. 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티에나스?” 전하께서는 거의 바람 소리같이 나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 같아, 나는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되었어.” 굳건하기만 하던 전하께서 힘없이 나에게로 무너져 내렸다. “그대가 있으면 됐어.” 한 번도 깜빡이지 않던 전하의 눈꺼풀이 아래로 떨어지고, 다시 한번 고요가 찾아왔다. 그게 비록 평안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고요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