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우
정은우
평균평점
가련한 밤

“어젯밤 일은 당연히 없던 걸로 하는 거겠죠?”“한 번 더 하자. 한 번 더 하고 싶어.”처음이었다.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몸이 맞는 상대를 발견한 것은.그저 사장과 비서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그날 밤, 완전히 바뀌었다.“전 사장님이랑 다시 잘 마음 없습니다.”“왜. 내 테크닉 별로였어? 아닐 텐데.”“전 같은 실수 두 번 반복하는 바보 같은 사람 아닙니다.”야무진 일 처리에 이름답지 않게 까칠한 여자, 송가련.천진난만한 질문에 튀어나오려는 욕을 겨우 되삼켰다.제가 모시는 상사는 또라이에, 바람둥이에, 사이코였다.뭐든 제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차강우.이번에도 잡은 먹이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몽글거리는 마음속 이상 증세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으니까.“그럼 나 좋아한다던 그건 뭔데.”무심한 한마디에 가늘게 떨리던 심장이 멈췄다.애틋한 그 밤의 기억을 탐하고 싶은 눈동자가 부딪쳐 왔다.“개 같은 새끼는 개 같은 짓만 골라서 하는 거 알잖아.”

그리고, 그리고, 그리다

“너 같은 놈 때문에 세상이 개판인 거야.”사랑에 배신당한 상처로 마음을 걸어 잠근 지우.절친의 애인이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물세례를 퍼부었건만, 이 남자 좀 이상하다.“미안하면 나랑 밥 먹어. 딱 세 번만.”트라우마로 인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하건.자신의 알몸을 본 여자. 배고플 때 생각나는 사람.당신만 ...

국자전

<국자전> 당신을 사로잡을 신인의 등장, 『주간 문학동네』 첫 투고 선정작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정은우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한국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이들이 겪는 사랑과 투쟁의 이야기를 담은 『국자전』은 강력한 이야기의 힘으로 장편소설 연재 전문 웹진 『주간 문학동네』의 첫 투고 선정작이 되었다. 특히 『국자전』은 ‘손맛’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전에 없던 유니크한 캐릭터의 한국형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시크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지닌 주인공 ‘국자’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유머와 세계를 대면하는 진지한 태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 『국자전』은 가장 특별한 능력 이야기가 가장 보통의 존재에게로 귀결되는, 가장 인간과 닮은 이야기이다. 『국자전』에는 따뜻한 유머뿐만 아니라 서늘한 비판의식도 담겨 있다. 인간을 쓸모의 유무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기는 인간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회상을 아프도록 꼬집는다. 대중을 분열시킴으로써 유지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은, 영웅과 반동의 격전지가 재개발의 현장이 되는 등의 무차별적인 사리사욕의 추구와 맞물려 인간을 착취할 수 있는 도구로만 간주하는 시선을 강요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비인간적인 세태가 통쾌하게 풍자될 때 다음을 향하는 길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입에 들어가서 소화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가능해.” ‘손맛’으로 승부하는 한국형 여성 히어로의 탄생 초등학교 교사인 ‘미지’는 담임을 맡은 반에서 왕따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받고 휴직한 상태다. 복직을 앞둔 그녀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첫 독립부터 이뤄내고자 엄마 ‘국자’와 식탁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독립이라는 말만 꺼내면 국자의 휘황찬란한 밥상이 그녀의 의지를 녹여버린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독립 선언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자신이 기능력직 공무원이며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비틀 수 있다는 국자의 고백에 미지의 머릿속은 새하얘지는데…… “혹시 나한테도 쓴 적 있어?” 묻는 미지에게 국자는 태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고, 아연실색하는 미지의 표정 너머로 국자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