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개정판]형수? 네가, 내 사촌 형수가 될 여자라고?“언제까지 나를 만날 셈이었지?”“가능하면 오랫동안.”처음부터 작정하고 속일 생각은 없었다. 그의 사촌 형과 결혼 얘기가 오간 건 그도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부도덕한 여자 취급은 사양하고 싶다.말로만 싫다고 하는 저도 최악이지만,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그도 정상은 아니지 않나?“나한테 왜 이래요?”“나도 궁금하다. 네가 뭐라고 내가 이러는지, 알고 싶어졌어.”서영은 전신이 빳빳하게 굳었다. 이곳은 비상구다. 누군가 그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넘은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뻣뻣하게 경직되어 서 있는 그녀와 달리, 그는 여전히 욕망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이서영, 넌 날 미치게 해.”당신만 미쳤다고 생각해? 정작 미쳐 이성을 상실한 건 그녀다.꿈틀거리며 그를 갈구하는 자신의 육체가 환멸스러웠다. 그에게 길들여져 버린 제 육체가, 그리고 때와 장소도 가리지 못하는 자신의 뜨거운 본능이 기가 막혔다. 빼앗긴 것을 찾는 것은 남자의 본능이다. 넌…… 내가…… 갖는다!치명적인 유혹을 해서라도 갖고 말리라.그의 사냥은 그렇게 시작됐다.
독은 늘 화려한 치장 속에 자신을 감춘다. 이 남자처럼. 그래서 세정은 이 남자가 두려웠다.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더 깊은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궁금함을 품게 될까 봐 무서웠다.강태민에게 그녀의 존재는 감정이 배제된 투자고 거래일뿐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미고 최고가 되어도 강태민의 상대는 제가 될 수 없다.하지만 더는 숨길 수 없는 애타는 마음은 끝내 그를 유혹했다.“날 선택했을 때에는 이 정도의 각오는 했을 텐데? 침대에서는 그리 매너 있는 놈이 아니라서. 물론 여기가 침실은 아니지만, 급한 불은 꺼 주지 그래? 입 벌려!”입술에 힘을 줬다고 생각한 순간, 턱을 잡은 그의 악력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뭉텅한 커다란 남성이 제 입을 비집고 들어왔다.반도 못 들어간 입안에서 남성이 제멋대로 꿈틀거리자, 세정은 아득함에 두 눈을 감았다.매너 없는 수컷을 선택한 대가가 호되게 그녀를 몰아쳤다.채권자와 채무자라는 관계에서 변화될 수 없는 절대 우위를 가진 남자다.양심이니 부채감 따위로 이 남자를 먼저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한순간에 그에게 빠진 것이 아니다. 18살, 교복을 입고 그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녀의 삶에는 키다리 아저씨 강태민뿐이었다.그에게 보여 주고 싶다. 당신이 투자한 주세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자인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확실히 증명해 보일 테다!
[15세 개정판]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연애만 하고 싶은 여자, 김태림.시집살이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엄마의 삶을 보며혈혈단신인 고아가 이상형인 되어 버린 그녀.그런데 자다가 돈벼락을 맞는 게 소원이었던 그녀에게 돈 대신 잘생긴 고아가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보면 볼수록 자꾸만 좋아지는 남자. 그런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여자도 욕망이 있어요. 남자를 안고 싶어 하는 욕망. 그리고 난 지금 당신을 무척이나 안고 싶어.”결혼은 필수, 연애는 선택!결혼이 하고 싶은 남자, 장인범.이상형이 고아라고 외치는 여자는 첫인상부터 별로였다.그런데 고아가 좋다는 맹랑한 말이 진심일 줄은 몰랐다.연애만 하자는 여자가 점점 좋아졌다. 그녀를 놓치기 싫어 애가 탔다.안고 싶다. 그녀의 유혹에 후끈한 욕망이 그를 뒤흔들었다. “김태림,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 알고 겁도 없이 덤벼?도망갔어야지. 잡을 생각을 하기 전에 몸을 사렸어야지.널 완전히 가지고 싶은 마음을 건드리지 말았어야지.”연애만 하고 싶은 여자, 결혼이 하고 싶은 남자.그들의 내 맘대로 안 되는 로맨스!!
[15세 작가개정판 및 외전선공개]- 내 아름다운 신부에게“교복을 입은 동생 친구에게 첫눈에 반해서지금까지 너 교복 벗기를 기다렸다. 애인하자, 조효경.”그때였다. 기습적으로 지혁이 그녀의 입술을 훔친 것은. 보드라운 입술에 그가 거침없이 입을 맞췄다.감질나면서도 농밀한 키스, 그리고 또 키스.입술을 타고 흘러들어온 뜨거움이 그녀의 가슴을 두근두근 건드렸다.“익숙해져. 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야하게 건드리고, 내가 준 것 이상으로 받아낼 거거든. 우리 집 유전자가 원래 야해. 각오해. 내 연애는 결코 점잖지 않아.”싫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모쏠의 연애혁명손 여사의 잔소리를 피해 올라온 옥탑방.좋다고 따라 다닐 때는 요리조리 피해 도망간 놈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놀란 것도 잠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다 놈과 입술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닳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닐 텐데.”“……최자경!”“혀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입술만 박치기한 건데 우리 서로 쿨하게 넘깁시다. 네?”겁도 없이 길현을 도발했다.잘나가는 놈이 옥탑방에 둥지를 틀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한 채.
손 여사의 잔소리를 피해 올라온 옥탑방. 좋다고 따라 다닐 때는 요리조리 피해 도망간 놈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놀란 것도 잠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다 놈과 입술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닳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닐 텐데.” “……최자경!” “혀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입술만 박치기한 건데 우리 서로 쿨하게 넘깁시다. 네?” 겁도 없이 길현을 도발했다. 잘나가는 놈이 옥탑방에 둥지를 틀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한 채. 임용고시 삼수에 느는 건 눈치뿐, 옥탑방 청소는 당연 제 몫이다. 아무도 없어야 할 시간에 욕실 문이 열리더니 젖은 맨발이 불쑥 나왔다. 털이 무성한 다리에…… 튼실한 허벅지. 그리고…… 꺄약! 털에 휩싸인 몽둥이 같은, 남자의 그 물건(?)을 보고 말았다. “뭐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테고…….” 처음 보는데? “내 것이, 네 신체 어딜 파고든 것도 아니고…….” 그럼 큰일 나지. “기가 막힌 건 난데, 왜 네가 소리를 질러?” 그런가? 그럼에도 그는 보란 듯이 알몸으로 서 있었다. “최자경. 나, 여자한테만 보여 주는데.” 자경은 헉헉, 뜨거운 숨만 끓어오르는 목에 힘을 주었다. 보여 준다는 말이 선정적으로 들렸다. 그럼 왜 그걸 나한테 보여 줘? 변태야? “너, 여자였어?” “그, 그럼 남자로 보여요, 내가?” “아니. 여자로 보여. 그래서…… 더 보여 주고 싶은데, 볼래?” 헉! 저 입을 그냥! 혀가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도발하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최자경의 연애혁명은 넣어야 할 것을 넣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으로 시작되었다.
손 여사의 잔소리를 피해 올라온 옥탑방. 좋다고 따라 다닐 때는 요리조리 피해 도망간 놈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놀란 것도 잠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다 놈과 입술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닳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닐 텐데.” “……최자경!” “혀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입술만 박치기한 건데 우리 서로 쿨하게 넘깁시다. 네?” 겁도 없이 길현을 도발했다. 잘나가는 놈이 옥탑방에 둥지를 틀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한 채. 임용고시 삼수에 느는 건 눈치뿐, 옥탑방 청소는 당연 제 몫이다. 아무도 없어야 할 시간에 욕실 문이 열리더니 젖은 맨발이 불쑥 나왔다. 털이 무성한 다리에…… 튼실한 허벅지. 그리고…… 꺄약! 털에 휩싸인 몽둥이 같은, 남자의 그 물건(?)을 보고 말았다. “뭐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테고…….” 처음 보는데? “내 것이, 네 신체 어딜 파고든 것도 아니고…….” 그럼 큰일 나지. “기가 막힌 건 난데, 왜 네가 소리를 질러?” 그런가? 그럼에도 그는 보란 듯이 알몸으로 서 있었다. “최자경. 나, 여자한테만 보여 주는데.” 자경은 헉헉, 뜨거운 숨만 끓어오르는 목에 힘을 주었다. 보여 준다는 말이 선정적으로 들렸다. 그럼 왜 그걸 나한테 보여 줘? 변태야? “너, 여자였어?” “그, 그럼 남자로 보여요, 내가?” “아니. 여자로 보여. 그래서…… 더 보여 주고 싶은데, 볼래?” 헉! 저 입을 그냥! 혀가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도발하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최자경의 연애혁명은 넣어야 할 것을 넣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으로 시작되었다.
<15세 개정판>발정 난 짐승이 아니라며 손끝도 안 대는 남편 vs부부관계 거부를 사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한데 무기력했던 아내가 갑자기 딴사람으로 환골탈태하여 반짝반짝 빛이 날 줄이야.매력 덩어리를 몰라봤던 그의 구애 작전이 시작된다.그의 본능은 사악하고 잔인하다.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이다.미친 거야.한마디로 그녀와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혼을 앞둔 그들이 이토록 야한 짓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짐승.이 순간 그들은 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본능에 의지해 충실히 움직였다.어차피 몸의 대화는 격식을 갖추거나 예의를 차리는 행위가 아니었다. 동물처럼 원초적인 본능의 지배를 받으며 철저히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타인처럼 산 1년을 되찾기 위한 음란 구애.그들의 꿀 떨어지는 신혼 로맨스.
[15세 개정판]권일 로펌의 후계자, 빛성준.잘생기면 뭐하나? 개뻔뻔에, 인성이 개차반인데.누가 겁내서 도망갈 줄 알고?그녀를 난민 취급하며 쫓아내려 틈만 나면 잔머리를 굴려대는저 또라이 때문에, 그녀의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겁도 없이 민며느리를 자처하고 들어온 윤하연.어디 여자가 없어서 저런 난민을! 일단 시험만 끝나면…… 무슨 수를 내든 내야겠다.“그런데 지가 뭐라고 날 감시를 해?”생각하다 보니 기가 막혔다. 아닌 척하면서 챙길 건 다 챙기겠다는 속셈인가 본데.그래, 어디 해 보자고! 너 따위한테 질까 봐?그나저나 윤하연을 어떻게 구워삶지?“윤하연, 널 한번 유혹해 봐?”아, 내가 미쳐!이 남자는 뻑하면 왜 벗어 대냐고!도통 적응이 안 된단 말이다.
<호수의 일>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흔들리길 바란다.” 얼어붙은 사춘기, 끝내 맞이하는 성장과 치유 『아몬드』 『유원』을 잇는 눈부신 성장소설 성장하는 이들의 마음을 세밀히 살펴 온 이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호수의 일』이 창비청소년문학 109번으로 출간되었다. 열일곱 살 주인공 호정이 은기와 만나 경험하는 설렘과 사랑, 각자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담았다. 정의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매만지는 탁월한 문장이 돋보이며, 첫사랑의 두근거림뿐 아니라 가족, 친구와의 갈등과 외로움 등 한가지로 정리되지 않는 여러 갈래의 깊은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겨울처럼 혹독하게 십 대의 시간을 통과한 이들, 쉽게 꺼낼 수 없는 마음을 간직한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눈부신 치유의 순간을 길어 올리는 성장소설이다. ★ 소설가 최진영, 문학평론가 한영인 추천!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흔들리길 바란다. 설레고, 아파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그렇게 당신의 봄을 맞이하기를. 최진영(소설가) 혐오와 비난에 맞서 소중한 것을 끝내 지켜 낸 사람들의 맑은 온기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 남는다. 한영인(문학평론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열일곱의 시간 『호수의 일』이 포착하는 사춘기의 계절은 한가지가 아니다. 흔히 사춘기는 봄에 비유되고는 하지만, 때로는 혹독한 겨울의 바람을 몰고 오기도 한다. 호정의 계절은 그렇게 매서운 겨울로부터 시작한다. 얼어붙은 호수처럼 춥고 외롭던 호정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동생이 아빠와 놀며 즐거운 웃음을 지을 때, 엄마가 진주에게 다정히 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을 때, 속에서 문득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듯 과거의 기억이 소환된다. 혼자 누워 있던 어두운 밤, 엄마와 아빠를 만나러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갔던 어느 저녁의 기억. 그건 진정으로 외로운 일이다. 누구와도 같지 않은 마음을 가졌다는 건. 나는 외롭다는 말보다 그 마음을 먼저 배웠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랬던 것이다. ― 본문 124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한 뒤 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호정은 집안을 떠다니는 원망의 분위기를 접하며 외로움이라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그 마음을 알아 버렸다. 화목한 가족에 녹아들 수 없는 호정은 엄마의 걱정과 아빠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껄끄럽기만 하다. 가족들에게는 냉랭하고 쌀쌀맞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또 다른 모습의 호정이 있다. 둘 다 자기 자신이지만 호정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다. 쉽게 ‘사춘기’라는 한가지 꼬리표가 달리곤 하는 그 시절의 마음은 이렇게 하나의 결로 흐르지 않는다. 『호수의 일』은 누구나 지나온 십 대의 순간이지만 자주 무시되곤 하는 예민한 감성을 섬세히 조명하며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우리는 그저 손을 잡고 있었고,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호수의 옆에 놓인 다른 기억, 은기와의 기억은 호정의 ‘안전한’ 마음에 균열을 만든다. 튀지 않는 전학생이었지만 은기는 어딘지 기우뚱한 가로등을 떠올리게 하는 소년이다. 호정은 흔한 SNS도 하지 않고 폴더 폰을 쓰는 은기가 궁금해지고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은기의 하굣길이 신경 쓰인다.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생각나는 은기에 대한 마음은 점점 설렘으로 커진다. 깊은 호수에 잠긴 것 같았다. 물결 하나 없이 잔잔한, 고요한. 햇살을 가득 받아 따뜻한, 그리고 환한. 손끝만 움직여도 공기가 물결이 되어 은기에게 전해질 것 같았다. 여기, 호정이가 있어,라고. ― 본문 87면 은기와의 시간은 특히 호정이 깊이 감추고 있던 어두운 시간을 다시 끌어올린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은기야’라는 말로 시작하던 호정의 독백은 차오른 설렘 끝에 왈칵 쏟아내는 진심이다. 특별한 이에게 털어놓고 싶은 진심은 외롭던 밤을 이겨 내는 마법이다. 하굣길을 함께하고 맛없는 급식 대신 특별한 저녁을 먹으러 가고, 사소한 순간이 소중해지는 사랑의 시작을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호정의 마음에 함께 물들어가는 은행나무의 빛과 거리의 풍경들은 독자를 호정의 마음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호정과 사이가 좋지 않던 곽근과 그의 무리가 은기의 과거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 은기가 사라지고 난 뒤, 죄책감에 휩싸인 호정은 친구들에게도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평범한 일상을 버거워한다. 학교에 가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사소한 일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호정은 친구들, 가족들과 다투고 고립을 자처하지만, 소설은 그런 호정에게 ‘중증 우울 삽화’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호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다만 아플 뿐이라는 진단은 호정을 안심시킨다. 사춘기의 변덕이라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청소년의 우울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되 과장하지 않고 조명한 점이 돋보인다. 또한 2022년 지금의 교실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현재까지도 개선되지 않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의 문제 등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들을 함께 녹여 냈다. 은기가 떠나고 다시 홀로 남았지만 호정의 마음은 전과 같지 않다. 단단히 얼어붙은 호수에 금이 가고 얼음이 녹듯, 가족 상담을 고민하고 친구들과 화해하며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흔들리며 아픔과 기쁨을 모두 겪어 낸 이들, 오랜 겨울 뒤의 새봄을 기다리는 사람 모두가 깊이 공명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눈부신 성장소설이다.
<오 나의 남자들> 금영 노래방에 등록된 쫀득한 유행가 가사로 쓰인 열일곱 고난주간 극복기 전공과는 전혀 무관하게 노래방 자막으로 한글을 떼고 곡 번호로 수를 깨쳤으며 노랫말로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고 탬버린으로 박자의 개념을 배운, 생활과학 고등학교 국제조리과학과 여고생, 아니 변두리 노래방 딸 나금영. 통금 여덟 시 이후의 세계를 마주하기 전 나금영의 세상은 강동원과 강동원이 아닌 남자들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떡처럼 말랑말랑했던 세계는 전 대통령과의 묘한 악연으로부터 시작해 딸에게만 딴나라국의 법질서를 들이대는 아빠, 163센티미터가 최대치인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나 단신인 남자가 대세인 날이 도래하길 꿈꾸는, 동성친구보다 더 동성 같은 친구 ‘최강’태진, 엄마의 옛사랑이자 아빠의 유구한 라이벌인 허당 엘리트 기자, 동성애자 의혹 속에 존립이 위태로운 담임선생, 교장의 유망주이자 풋사랑 엄친아, 학교 스타에서 탈의실 굴욕남으로 전락한 예비 아이돌, 형형한 눈빛과는 거리가 먼 시력으로 육사에 지원해 보지도 못한 아빠의 야망을 대신 이루어야 할 운명의 오빠, 프레지던트 변(태), 그리고 소녀들의 로망인 강동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만남과 해프닝을 거듭하며 균열을 일으킨다. 열일곱이 사랑하고 만났던 남자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금영의 떼려야 뗄 수 없는 ‘떡실신’ 떡 동아리 단짝들의 사연 깊은 넋두리가 속사포처럼 내쏟는 일상어와 쫄깃한 노랫말을 업고 호기롭게 내달린다. 이현의 글에는 허수아비 같은 인물들이 넘쳐난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들 냄새가 나기도 하고, 까닭 없이 말 걸고 싶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출렁거린다. 쫄깃하다. 무엇보다 “잘 모르는 동네”에 도착한 듯한 인물들이 "이대로 나가 버리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품은 채, 소설 속에서 툭툭거리며 서로 버팅긴다. 그냥 작가를 믿고 따라가다 보면 헛걸음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생긴다. _김경주(시인, 극작가) 우리는 무엇의, 누구의 배웅을 받으며 그 시기를 떠나왔을까 열일곱. 마침표 혹은 시작. 어른과 아이의 경계, 일?이차성징을 이미 지나 아니면 지나는 중의 정체불명의 시기. 제대로, 근사하게 어른이 되고 싶었던 여고생, 나금영. 그러나 어른이라 이름 붙여진 세계는 길목에 진입금지 표지판이라도 박아 놓은 듯 패스하기가 가뿐하지 않다. 주민등록증 발부되듯 저절로 그 세계의 입장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나금영. 마냥 설레거나 즐겁지도 않고 어리광으로 누군가를 졸라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환호를 받으며 그 시기를 아름답게 기념하고 싶었던 나금영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예측불허 접촉사고에 봉착하고 만다. 노래방 뒷방에서 맞닥뜨린 기성세대의 부정, 무리수를 둔 첫사랑, 오빠의 반란, 사랑과 우정 사이의 딜레마, 잘난 척, 아닌 척, 있는 척, ‘척’하는 허세꾼들과 언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같은 세상, 그 길 위에서 어딘지 모를 앞을 향해 하루에도 열댓 번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에 기대어 나아가야 한다. “잊고 싶은 기억이거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거나” 우정 어린 농담이거나 애정 어린 충고이거나, 열 명의 남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열일곱을 떠나 열여덟에 무사히 착지하려는 나금영의 악전고투는 눈물겨우면서도 호탕하고 흐무러지게 아름답다. 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삽입된 유행가 노랫말들이 마치 내 얘기 같은 만고불변의 진리를 일깨우듯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엄마 아빠 품에서 보호받다가 우연히 통금 시간 여덟 시 이후의 세계를 훔쳐보게 되면서 부모와 갈등하고, 연애와 우정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닥치는 나금영을 보며 환호했다. 그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내 모습이었다._천혜민(성수여자고등학교 영상미디어과) 전문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일곱의 몽타주 전태일 문학상, 창비 좋은어린이책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현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작가다. 입심은 거침없고 렌즈가 포획한 지점은 간지러운 곳을 긁는다. “푸른 유니폼에 빨간 망토를 걸치고 악당들을 묵사발로 만들어 줄 능력은 없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마력을 발휘한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바통 터치를 하듯 구성된 『오, 나의 남자들!』은 이어달리기를 관람하듯 감각이 요동친다. 다각화된 인물들과 유머러스한 이야기, 기성세대를 향해 날선 이야기는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변곡점을 건너는 이들에게나 이미 건너온 이들에게 “그 시절을 목청껏 노래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책 속의 아이들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고민을 안고 현실에서 한 발쯤 붕 뜬 채 ‘탈출’이라는 이름의 마스터키를 품고 살아가는 그 얼굴. 그러나 눈앞의 비상구를 두고도 발을 돌릴 수밖에 없는 그 얼굴은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의 내 얼굴이었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음을, ‘고마운 상처’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떠올리며 읽는 내내 웃음과 뭉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노래방으로 직행해 5131번을 누르기로 한다. “그땐 그랬지.” 참 어렸고, 뭘 몰랐으나 아름답던 그 시절을 목청껏 노래하고 싶어진다._장연정(작사가) 음악이 예술이지 실용이냐? 한마디로 하나가 된 금영이와 친구들. 부유하나 아버지의 문란한 사생활로 상처받은 뒤 떡 무형문화재인 외할머니의 뒤를 이어 떡 명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키우는 마루, 검소한 목회자의 딸로 한때 도를 넘는 자유분방함으로 어디를 가나 신도들의 감시카메라에 시달리는 주관이 뚜렷한 현지, 록밴드를 꿈꾸었으나 이름과 다른 반전 외모로 고배를 마신 ‘최강’태진, 모든 곡번호를 섭렵하고 한마음 노래방 8번방에서 친구들과 노래 릴레이로 세상을 논하는 노래방 논객 나금영, 그리고 나금영을 둘러싼, 강동원보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 그 녀석, 그 놈들의 이야기가 마지막 강동원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변두리 한마음 노래방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금영에게 또 다른 세상이 열리면서 찾아온 혼란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성장통은 아프다. 막이 벗겨지고 드러난 세계는 똑 떨어지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부모의 맨 얼굴을 마주한 뒤에 겪는 갈등은 십칠 년 동안 스스로를 지탱해 왔던 뿌리마저 흔든다. 싫다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그렇다고 눈감을 수도 없는, 그 틈바구니에서 성장과 변화의 에너지는 꿈틀거린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나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열일곱의 몽타주는 날마다 새살이 돋아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여느 청소년책들과는 달리 비슷한 듯, 날카롭게 구별되는 캐릭터 고유의 매력들로 전문계 고등학생의 일상들을 솔직 담백하게 담고 있다. 우리에게 맞닿아 있는 친근한 말투와 유쾌하면서도 눈물겨운 내용이 마음을 흔들었다._홍유리(성수여자고등학교 영상미디어과) 열일곱 봄날을 지나 막바지에 이르러서, 하필이면 그러나 다행히도 우연과 필연의 만남을 거듭하며 나금영이 얻은 진리는 이것. “한때, 나에게 세상의 남자는 단 두 부류였다. 강동원과 강동원이 아닌 남자들. 그리고 이제 나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단 두 부류라고.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 나의 남자들 역시 내가 아닌 사람들일 뿐이라고.” 지금까지와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사회 속에서 힘겨워할 사춘기의 민감한 이들이여, 앞서 그것들에 의해 상처받고 이겨낸 ‘나금영’을 통해 어느새 한 뼘쯤 다가와 곁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래를 가벼운 마음으로 맞아 보는 것은 어떨까_최윤경(성수여자고등학교 영상미디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