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선우찬 씨가 그러했듯 손녀인 선우현 씨가 계속해서 이어 가시면 됩니다.” 현이 가진 것이라곤 자신이 지지도 않은 빚과 낡은 작업실, 그리고 바짝 말라비틀어진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거기에 할아버지가 맺은 계약이 더 있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 거죠?” 남자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내가 어떻게든 계약을 이행할 테니까 절대로 할아버지는 찾아가지 마세요. 그 약속은 해 줄 수 있어요?” “그건 선우현 씨 하기 나름입니다.” 그 순간 현의 손 위에 남자의 명함이 내려앉았다. ‘기범호’, 그 곡선 하나 글자 하나가 은근하게 빛을 반사했다. 은실을 박아 넣은 고급 명함은 그의 분위기와도 묘하게 어울렸다. 무슨 뜻이냐는 듯 미간을 좁히며 노려보자,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빚을 더 빨리 탕감할 또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범접, 명백한 수작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