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었다. 앓던 것을 끄집어내려 무작정 산에 올랐던 날, 붉은 색의 점퍼를 입은 여자를 만난 것은. 서현준 세린호텔 상무이사. 언제나 전쟁 같은 삶에, 비밀이 많은 그녀를 만나다. “그렇게 내 앞에서 뾰족하게 날만 세우지 말고 나하고 연애나 합시다. 당신은 나를 물고, 난 당신을 물고. 짐승처럼.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우리 연애 조건에 이런 것도 있었는지.” 강하연 한담 갤러리 큐레이터 늘 텅 비었던 삶에, 모든 게 완벽한 그를 만나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당신과 깊어지는 건 괴롭고, 당신을 거절하는 건 더 괴로워요.”
김형주 백운 종합병원 흉부외과 치프. 원나잇에 성공할 뻔한 여자가 인턴으로 병원에 왔다. “재미있군. 다시 만나다니.” 서유진 백운 종합병원 응급외상센터 인턴. 원나잇 상대가 될 뻔했던 남자가 치프로 병원에 있었다. “이번 생, 난 망했다.” <본문 중에서> “저어, 저, 정말 죄송한데요…….”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저토록 달아올라 있는 남자 앞에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지지가 않았다. 더구나 그녀가 먼저 함께 밤을 보내자고 제안 했으면서 말이다. “흐음.” 남자가 입가를 늘어뜨렸다. 얼핏 낙담의 쓴웃음 같은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없어진 거죠?” “어, 그게…….” “좋아요. 어쩔 수 없지.” “저,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겠다. 추하다. 만약 그와 끝까지 갔다면 적어도 그의 이름 정도는 물을 용기를 냈을 텐데, 지금의 유진은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그녀를 남자의 목소리가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네.” “이거, 풀어진 모양인데 가져가요.” 남자가 목걸이를 손가락에 건 채로 그녀에게 내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유진은 좀 전까지 그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이 얼마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 남자, 바람둥이가 맞는 모양이다. 전용 룸에서의 목걸이라니. 유진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얼굴을 들어 그를 마주했다. 조금은 당당해진 목소리가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거 제 목걸이 아니에요.”
마피아조직 보스였던 부친이 죽은 날, 그 아이가 곁으로 왔다. 아이는 어느새 여자가 됐고, 느끼지 말아야 할 욕망이 자꾸만 그를 채근한다. “내 인생에 너처럼 달달한 게 허락될 리가 없지.”모스크바 호텔 대표, 레오니드 니콜라이 스타브로긴.한국인이었던 모친의 유연함과 마피아의 보스였던 부친의 강인함을 물려받은 혼혈.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흘러들어왔다. 모든 게 비었다고 느꼈을 때, 그녀가 채워졌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그의 세계에 가두고 싶어졌다.모든 걸 속여서라도. “나쁜……새끼.”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에 그의 옆에 머물게 된 경호원, 김태미.아무것도 없는 텅 빈 기억, 텅 빈 시간. 다 채우려 쫓아가 봐도 매번 돌아오는 건 금세 무너지고 말 신기루뿐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너무도 간절하게. 사랑과 증오를 넘나드는치열하고 강렬한 느와르, 인 러시아! (noir in Russia!)<[본 도서는 15세이용가에 맞게 수정&재편집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