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가수 엘리스. 유명 여배우 클로이 라나의 차에 사고를 당한 그녀는 사고 가해자 클로이의 몸속에 갇힌 자신을 발견한다.>내리는 사람 없이 다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으로 카일이 손을 뻗었다.“내려. 너랑 계속 얼굴 마주하는 거 역겨우니까.”“전, 클로이가 아니에요.”벼르고 별렀던 말을 드디어 내뱉었다. 제발, 조금의 이해라도 받길 바라며 흔들리는 시선을 고정했지만, 고대했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카일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피식, 소리를 냈다.“미쳤군.”소속 에이전시 KL Ent. 오너인 카일 리스는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눈빛으로 그녀를 대하는데...[본 작품은 15세이용가로 재편집된 작품입니다.]
* 밤길을 헤매다 마주쳤다. 잔뜩 털을 세운, 제 상처를 핥기 급급한 맹수와. 외진 시골 마을, 하서(夏署). 늦은 밤, 고장 난 차에 고립된 여배우 채서연은 동네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이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남자, 도재현의 도움을 받으며 그를 따라가게 된 서연. 도착한 인적 없는, 폐업한 펜션은 그녀가 몸을 숨기고 잠적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달라는 데로 줄 테니까 여기 2주만 있게 해 줘.” 막무가내로 펜션에 눌러앉은 그녀가 환영받지 못한 손님인 건 분명했다.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서연의 노력에도 불구, 재현은 매사 시큰둥하고 차가운 태도로 그녀를 대한다.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나 서울 가고 나면 두 번 볼 것도 아닌데 그냥 쿨하게 즐기면 안 돼?” “넌 계집애가 무슨 그런 말을 뻔뻔하게.”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 없는 둘만의 공간. 부담 없이 몸을 나누는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폭풍을 불러올, 미친 제안이었다.
그저 무탈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내게,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드는 남자가 다가왔다. 간질이듯 얼굴선을 따라 내려간 손가락이 입가를 지그시 눌러왔다. 하아, 가볍게 문질러지는 감촉만으로도 온몸의 솜털이 오소소 일어났다. “안 밀어내네.” 그의 말에 난 대답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입술이 입술 끝을 간지럽히고, 호흡이 뒤섞였다. “가만히 있는다는 건,” “…….” “승낙이란 뜻인데.” 그 순간 현관을 밝히고 있던 센서 등이 툭 꺼졌다. 주변이 온통 어두워진 탓에 백강현의 윤곽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몸이 옥죄는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전신의 솜털이 들고 일어섰다. 난 고르지 않은 숨을 숨기지 못하고 더듬더듬 말했다. “승낙… 아니에요.” “거짓말.” “…….” “넘어왔잖아.”
<정자 기증을 받고자 미국행을 택하며 퇴사를 통보한, 한종 그룹 전무 비서 설아인. 비혼 임신을 감행하려는 그녀에게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 들어왔다. 명실상부 최고의 유전자를 보유한 그녀의 상사, 차승재에게서.> 승재는 습관처럼 입술을 매만지며 헛웃음을 흘렸다. 웃고 있는 입꼬리와 달리 서늘한 눈이 아인을 향했다. <본문 중> “만약,” “…….” “내가, 도움을 건네면 받을 의향이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기증자가 되겠다면요.” 아인은 누가 들었을세라 눈을 굴리며 주위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들의 이야기에 딱히 귀 기울이는 이는 없어 보였다. 모양새 좋은 눈썹이 명백한 의도를 담고 휘었다. 솔직히 이 어리석은 여자를 속이는 데 죄책감은 없다.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그래서 가짜 미끼를 던졌다. 저주처럼 태어난 제게서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고 싶지 않아 정관 수술을 받은 것이 3년 전. 간절함에 눈이 먼 그녀가 지금 던진 미끼를 문다면, 모두에게 win-win이다. 그는 절실히 원하는 유능한 비서를 되찾을 수 있고, 그녀는 미혼모가 되지도 않을 거고, 불행한 생명을 만들어 내는 과오 따위도 저지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여자는 당황하면서도 단칼에 거절했다. 잔에 남은 액체를 단숨에 목 안으로 털어 넣은 승재가 훗, 우습다는 듯 혀로 입술을 쓸었다. “어째서?” “전무님은 여러모로 대단한 분이시지만, 제가 기증자에게 원하는 요건을 갖추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뜻이죠?” “저는 다정다감하고 유머 감각을 지닌 기증자를 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