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에 멱살은 너무 무례한 것 같은데.” “멱살 잡히기 싫으면, 주인공으로서의 소임을 다했어야죠. 오죽했으면 내가 기다리다 지쳐 찾아 나섰겠느냐고!” 쥬아나 공녀가 납치당한 상태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단 1화 분량. 그 1화 내용대로 주인공 카스바르 드한을 만나기까지 장장 1년이 걸렸다! 갖은 고문 속에서 그녀는 단단히 결심했다. 이 망할 원작을 모조리 다 깨부숴 버리겠노라고. 그런데……. “쥬아나! 내가, 내가 널 얼마나 걱정한 줄 알기나 해?” 8년 된 소꿉친구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조만간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거라고.” “르메르시 공녀, 나와 교제해 주겠습니까?” 소문난 바람둥이 남작, 거기다가 황태자까지. 그러고 보니 이 소설…… 남주 후보가 네 명이나 되는 역하렘이었어! 진심 피곤한 역하렘은 이쪽에서 거절한다!
백도학에게 아내 차지윤은 새어머니가 심어 놓은 스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래서 더욱 그녀를 밀어냈다. 모질게 대했고, 경멸했다. “차지윤이 죽었다고?”그 소식을 듣기 전까진.이혼을 요구하고 사랑을 찾아 떠났으면 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지. 모든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제 눈앞에 서 있다. 진여울이라는 이름의, 초라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 * *“저와 수업을 하고 싶어 하시는 이유가 그 여자분과 제가 닮아서인가요?”아내를 닮은 여자와의 미술 과외.도학은 주춤하는 그녀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자연스럽게 앉혔다.달아나려 들썩여도 놓아줄 생각 따위는 없어서.“선생님께서 계속 도망치시니까.”“배, 백도학 씨.”남자의 입매가 여지없이 휘었다. 서로의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였다.여울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커다란 손이 그녀의 한쪽 뺨을 감쌌다.“선생님이 원한다면 그녀를 잊어 볼게요. 오로지 당신만 볼게. 당신만 생각하고, 당신만 안을게요. 꿈속에서도 오로지 당신만… 탐할 테니. 원하는 걸 말해 봐요.”
젠틀한 사이코패스, 아토(AtO) 뷰티의 부회장 설태건.거침없는 추진력과 상황을 분석하는 냉철함, 몇 수를 읽는 두뇌를 가진 그에게 최근 위기가 찾아왔다.“이걸 정말 한 비서가 썼다고?”전두엽을 자극하는 제목과 날것의 묘사가 가득한 19금 웹소설 작가가 한봄이라니.게다가, 제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남자 주인공의 입에서 흘러나온다.그것도 19금 장면 속에서!설마…….“하, 한 비서가 날 두고 이런 상상을 한 거라면?”그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수행비서 한봄의 이중생활을 깨달은 순간.유교 보이 설태건의 업무 난이도가 수직 상승했다.***“부회장님, 혹시…….”소설 속 여주인공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한봄이 이마로 손을 뻗자, 설태건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역시나 미열이 있으시네요. 한 시간씩 스케줄 미루겠습니다.”“이제 불쑥불쑥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그녀를 볼 때마다 평정심을 잃는 건 지난밤 읽었던 소설이 떠올라 그런 걸까.아니면, 모든 게 쉬웠던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쉽지 않았던 단 하나,한봄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