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자리에 불려 나간 강민재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고스란히 그의 짜증을 견뎌 내고 있었다.“듣고 나왔을 테니 취미나 하는 일, 이런 질문은 생략하죠.”“네.”“나이도 물론 알고 나왔을 테고, 궁금한 거 없습니까?”“네.”적어도 그가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는 아닌 게 틀림없었다.답답하긴 했지만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아 편했다.“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난 좋은 남편, 그거 될 수 없을 겁니다.또한 사생활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인 공간엔 침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아내라고 해서…….”“더 좋네요.”“네?”“솔직하고 군더더기 없어 좋다고요.”“소은향 씨.”“네.”“지금 그 말, 나와 결혼해도 좋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남자의 장식품이길 스스로 원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길 자처하며바람을 피우려면 조용히 피우라고 친절하게 권장까지 하는 여자.그녀는 완벽한 아내였지만, 이상한 여자였다.강민재, 그는 소은향이라는 존재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운명 같았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찬란했지만, 엉켜 있던 과거의 실타래가 두 사람의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버틸 만한가 보군.”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여자를 말끄러미 바라보던 태진이 말문을 열었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손하는 제 대답이 우스워 비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제 반응을 살피는 그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던 걸까. “언제부터 눈치챈 거지? 내 본명이 소태진이 아니라는 걸.” “이제 와 그게 왜 궁금한 거죠?” “대답해, 문손하.” “원하는 걸 이루었잖아요. 그럼 기뻐하세요. 그렇게 벌레 씹은 얼굴로 날 취조하려 들지 말고.” 서로의 존재가 상처뿐인 관계가 되어 버린 두 남녀. 용서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마음을 비워 가는 그들의 이야기. 「사랑 안에 머물러」
이하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도박으로 얻은 가난 때문에 안 해 본 일이 없다. 인생은 즐거운 거라 믿으며, 하나는 어마어마한 빚을 업고도 밝게 일하며 살아왔다. 가진 거라고는 잘생긴 얼굴밖에는 없는 대부업체 사장 김도진에게 채용되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때려치운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그놈의 돈! 돈! 돈! 그놈의 돈이 뭐라고. 하나는 성격 개차반, 싸가지 대마왕인 도진 밑에서 3년째 근무 중이었다. 말만 번지르르한 비서일 뿐, 그에게 전천후 부림을 당하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기요, 사장님 저하고 결혼 안 하실래요?” “뭐?” “저하고 결혼하심 저 정말 잘할게요. 5천만 땡겨 주심 안 될까요?” 도진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눈앞의 조그만 여자애를 내려다보았다. 머리에 돈 생각만 들어찬 맹한 계집애. 혹시 AI 걸린 고기를 먹어 정신이 이상해졌나? 그런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다. 3년 동안의 정 때문에 내 정신도 이상해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