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물] TV를 틀면 바이러스에 관련된 뉴스가 하루에도 수십 번 흘러나온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사고회로가 마비되고, 오직 폭력성만이 육신을 지배한다고 한다. 처음엔 나 자신을 속였다. 괜찮을 거라고, 내일이면 좋아질 거라고. 하지만 TV마저 끊기자 내게 남은 건 세상을 향한 두려움 뿐이었다. 난 아파트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회사에 출근한 아내는 일주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창밖에선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사람들의 비명과 정체모를 존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니다. 목젖이 갈리는 기괴한 소리, 절규에 찬 해괴망측한 소리. 난 아파트에 갇혀 창밖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현실을 바라본다. 커튼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며 오지 않을 구조대를 기다린다. "아빠, 밖에서 이상한 소리 들려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난 그런 딸아이를 품에 안으며 오늘도 거짓말을 한다. "괜찮아, 괜찮아." "무서워……"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편의점에서 일용할 양식을. 공공화장실에서 안락한 숙면을.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박태상. 그는 과로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며 삶의 공허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째 모습을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온갖 원망 섞인 말을 쏟아내고 싶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태상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굶주린 모습을 보고 편의점으로 향하는 박태상. 하지만 돌아온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사채업자들은 장례식장까지 찾아오게 되고, 박태상은 아무런 발악도 못한 채 그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박태상은 억울한 마음과 절망속에 통나무장사의 희생자가 된다. 이대로 죽은 줄만 알았는데, 박태상은 어느 자그마한 방안에서 눈을 뜨게 된다. 팔에는 상주완장을 차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수많은 조문객이 박태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한 남자가 태상에게 다가오며 이렇게 얘기했다. "박상원씨,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십니까." 박태상은 어벙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박상원. 그것은 아버지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