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랑 자고 싶어.’ 제기랄. 머리를 세게 흔들어 떨쳐냈다. ‘나 권유이가 너 차휴인이랑 자고 싶어 한다고.’ “으아앗! 집어 치워! 안 되는 일이잖아, 안 되는데 왜 자꾸 생각해! 너야말로 욕구불만 아니야, 차휴인!” 지금 이상할 만큼 빛나는 게 과연 내 눈인가? “……이런 거 싫어. 쓸데없는 기대 갖지 마. 난 평생을 원해.” 그렇게 말을 해주는 데도, 거울 속의 눈은 반짝이기만 한다. 헛된 기대를 품고 있는 모양이다. 바보같이. 유이는 널 좋아한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원한다고 했다. 자고 싶다고 했다. 바로 이 몸을 원한다고. “맙소사, 어쩌면 좋지.” 약점. 그래. 넌 내 약점이다. 난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데, 꼭 하나씩 약점이 생기곤 했다. 그게 지금은 너다.
내가 웃는 게 가장 예쁘다고 말해준, 소년. 그 소년을 사랑했다. 사랑받는 것을 꿈꾸었지만,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서 좋았다. 내 예쁜 소년에게 한없이 주고, 그 외의 사람에게는 무엇을 받아도 고맙다고 여기지 않았다. 로프를 내밀어줄 테니 자신과 사귀자고 한 다른 소년. 내 예쁜 소년의 친구이자, 내 짝사랑을 아는 그. 자꾸 주면서 뭔가 받고 싶어 하는 그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다. 스스로도 짝사랑을 하는 주제에, 다른 이의 짝사랑에 놀랍도록 무덤덤했다. 내 위태로웠던 세계가 마침내 붕괴하던 날, 가차 없이 버렸다. “이깟 일로 죽지 않아.” 상처 입은 눈으로 그는 웃었다. 그래, 짝사랑이든 무엇이든 어차피 사람의 마음. 결국 시시한 거니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사랑이라는 건. 8년 후, 얄궂은 인연은 내 앞에 다시 그를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또 말한다. “채다미, 나랑 다시 시작하자.” 여전히 여자 보는 눈이 나쁜 사람. 아니면 스무 살 적의 내가 그에게 충분히 독하지 않았던 걸까? 무뚝뚝하고 강파른 주인과 앙큼하고 묘한 구석이 있는 몸종. 4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의 그들은 과연……?
명랑만화 주인공, 슈퍼히어로를 만나다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신경 발군/몸 튼튼 심성 착하고 쾌활발랄, 정의로움/마음 튼튼 예쁘고 인사성 좋음/동네의 인기인 다만 단순함, 엉뚱함, 눈치 없음/필수조건 열일곱 살의 화담은 틀림없는 명랑만화 속 주인공이었다. 오월의 어느 하루, 온 세계에 금이 가기까지. 잔인한 오월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시작되어 엄마와 교대하듯 그녀의 세계에 나타난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났다. 처치곤란의 외삼촌 때문에 빈털터리 고아가 된 것은 덤. “늑대를 피하려면 가장 튼튼한 집으로 가는 거야.” 바야흐로 화담이 살게 된 서울에는 아버지의 부인과 그녀의 아름다운 두 아이가 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구원자, 차인후가 있다. 잊을 만하면 화담을 찾아오는 악운이란 진상 고객도 쩔쩔매며 물러서게 만드는 차인후라는 존재. 산산이 금이 간 그녀의 세계가 어느샌가 영웅판타지로 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결혼원정을 가서 데려온 여자였다. 사유가 태어난 지 두 달 후 어머니는 그녀를 두고 도망갔다. 아버지는 사유를 ‘팔백만 원’이라고 불렀다. 일곱 살 여름, 아버지는 사유를 이천만 원에 팔아넘겼다. 남는 장사였다. 처음 만난 천사처럼 어여쁜 소년, 한조는 그녀를 ‘벌레’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그녀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그 후 십이 년. 한조는 이제 사유를 ‘개’라고 부른다. 걷어차이고도 금세 일어나서 주인을 향해 꼬리를 치는 개처럼, 사유는 한조를 향해 웃게 되었다. 웃으면 웃을수록 마음속의 단단한 결정은 커져간다. 그러나 아직 그 결정이 녹을 ‘언젠가’는 멀고 먼 꿈같다. 그녀가 싫어하는 여름이란 계절로 가는 길목. 사유는 환한 햇살을 닮은 소년, 동화를 만났다. 처음으로 가슴에 누군가의 눈빛과 목소리를 담았다. 천천히 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봄날, 화산 노파는 조카 손자들을 보러 운몽산으로 떠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주의 무영산에서는 야시(夜市)가 열리고 있었다. 조금은 진귀해 보이는 선물을 금 열 냥에 샀다. 꽃처럼 좋은 향기를 발하는 유난히 몸이 따뜻한 인간 소녀. 다만 왼쪽 얼굴에 남은 화상 흔적이 어여쁜 얼굴을 가린 하나의 흠. 첫째 조카 손자 휘. 그 어떤 아름다운 것이라도 자그마한 흠 하나에 마음이 식는 그에게 줄만 한 선물은 아니었다. 둘째 조카 손자 료. 계집에겐 일고의 관심조차 없다지만 늘 싸늘한 그 아이의 몸을 녹여줄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룻밤 길을 달려 다다른 운몽산의 저택. 향나무 아래에서 흙을 덮고 자고 있던 료가 소녀의 주인이 된다. 결코 좋게 볼 수 없었던 첫인상. 하지만 화산 노파는 말한다. “저래도 료는 상냥한 면이 있단다. 자기 것에 한해선 말이지.” 소녀는 싸늘한 주인의 베개 신세가 되었다. 료가 소녀에게 지어준 이름이란 것도 베개란 뜻의 ‘침아(枕兒)’. 소녀는 실망했지만, 료는 시큰둥하다. 무뚝뚝하고 강파른 주인과 앙큼하고 묘한 구석이 있는 몸종. 4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의 그들은 과연……?
탄탄한 스토리와 영화 같은 내용 전개, 독자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은 문은숙의 장편소설 〈킨〉 짙어가는 서로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이 날카로운 감정과 함게 소용돌이 치기 시작한다. 소유하려는 자, 벗어나고자 하는 자. 그들의 운명은? 첫 번째 Keen - 날카로운 열망의 덫, 이사유 “언젠가 기필코 오로지 날 위해 살고 날 위해 웃으면서 살 거야. 두고 봐. 날 이렇게 홀대한 세상에 복수하겠어.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움켜쥐고, 가장 높은 곳에서 이 더러운 곳을 한껏 비웃어 줄 거야. 그땐 내가 사람이란 걸 알게 될 거야, 류한조.” 두 번째 Keen - 타오르는 격통의 피, 류한조 “마음 같이 눈에 안 보이는 것 따위 상관없어. 사랑 받고 싶다느니 사랑하고 싶다느니 그런 배부른 소리 지껄이지 않아. 옆에 있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을 수 있으면 족해. 살 거야, 죽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 옆엔 반드시 네가 있어야 해, 이사유.” 세 번째 Keen - 선명한 빛의 향기, 민동화 “괜찮아. 너를 담는 걸로 내 가슴은 가득 차버렸어. 그러니 어떤 길을 가든 지켜봐주겠어. 아무리 먼 길이라고 해도 너를 보며 갈 수 있다면 후회 따위 하지 않아. 나는 그저 네가 행복해서 웃는 게 보고 싶을 뿐이야. 부탁이야, 행복해줘, 사유야.”
서투르고 욕심만 많았던 저 소녀 시절.나희는 부끄러운 첫사랑을 했다.못내 좋아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고, 죽도록 탐났지만 오롯이 그가 이유는 아니었다.언제나 한 방울의 독이 따라다니던 그녀의 첫사랑.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예쁜 추억이 되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랑. 그것이 짝사랑에 그쳤다는 것에 나희는 두고두고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고 간직했을 것이다.가슴 깊은 곳,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보물 상자 속에 고이고이.하지만 십이 년의 시간을 건너 뛴 어느 날,그가 그녀의 세계로 걸어 들어왔다.신휘영, 변함없이 눈부신 그녀의 길티 플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