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집을 내고 흔적을 남기는 것도, 잘라내든 찢어내든 바스러트려 없애는 것도 다 나만 할 수 있어.” 신분이 필요했던 천민 출신 남작 클렌 폰 르쉘. 집안의 빚을 갚을 돈이 필요했던 백작가의 영애 라비안 애들레이드 폰 엘더. 고귀한 품격, 우아한 기품, 고고한 자존심, 드높은 자부심까지. 목적이 분명한 결혼임에도 클렌은 라비안의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을 보면 이상하게 허기가 져.” 혹독한 부모를 둔 덕에 너무나도 새하얬던 것이다. 하나, 하나 손수 가르쳐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게 딱 마음에 들었다.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그녀를 제 손으로 물들여 온전히 제 것으로 삼을 일이 너무나도 기꺼웠다. 클렌은 이 결혼을 완벽한 불행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손.” 홍연은 ‘내가 무슨 강아진가.’ 하는 생각을 하며 쭈뼛쭈뼛 손을 내밀었다. 소매 밖으로 나온 하얀 손바닥 위로 짙붉은 주머니가 놓였다. 황제의 단정한 손끝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분명 그녀가 받고자 한 것은 간택의 탈락을 상징하는 청낭이었다. 그러나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어떡해.” 작게 새어 나오는 혼잣말과 함께 붉고 아리따운 홍낭은 결국 그녀의 것이 되었다. 그렇게 예부상서부의 치명적 문제아, 천방지축 서홍연은 언니를 대신해 가면을 쓴 채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황제로부터 재인의 첩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은 가면 너머의 황제와 홍연을 얽어매고 마침내 두 사람은 잔인한 황궁의 암투 앞에 서게 되는데……. 암투에 맞서 결국 냉혹한 칼을 빼 든 황제. 그리고 그 칼 앞에 서게 된 홍연. 과연 홍연은 상처 가득한 황제를 끝까지 품어낼 수 있을까.
“흠집을 내고 흔적을 남기는 것도, 잘라내든 찢어내든 바스러트려 없애는 것도 다 나만 할 수 있어.” 신분이 필요했던 천민 출신 남작 클렌 폰 르쉘. 집안의 빚을 갚을 돈이 필요했던 백작가의 영애 라비안 애들레이드 폰 엘더. 고귀한 품격, 우아한 기품, 고고한 자존심, 드높은 자부심까지. 목적이 분명한 결혼임에도 클렌은 라비안의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을 보면 이상하게 허기가 져.” 혹독한 부모를 둔 덕에 너무나도 새하얬던 것이다. 하나, 하나 손수 가르쳐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게 딱 마음에 들었다. 어느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그녀를 제 손으로 물들여 온전히 제 것으로 삼을 일이 너무나도 기꺼웠다. 클렌은 이 결혼을 완벽한 불행으로 이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