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대학생 희재는 번화가에서 우산 없는 사탄을 만났다. “당신, 누구예요? 누군데 자꾸 신부님 행세를 하고 다녀요?” “왜? 궁금해? 내가 누군지?” 그는 희재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인 유진과 모든 게 똑같았다. 얼굴, 키, 심지어 목소리까지. “사탄이야, 나는.” 그는 짓궂었다. “그럼 난 간다. 오늘도 자기 전에 기도 열심히 하고 주무시고. 그럼 꿈에 유 신부가 홀딱 벗고 나타나 줄지도 모르잖아.” 그는 무례했다. “종교, 그거 나약한 사람들의 도피처 같은 거 아닌가?” 그는 불경스러웠다. “난 그런 거 알려줄 엄마가 없어서.” 또, 그는 서러웠다. “토마토? 크림?” “크림이요.” “베이컨 좋아해?” “네. 좋아해요.” “버섯은?” “좋아해요.” “브로콜리는?” “좋아해요.” “나는?” “좋아해요.” “아, 그렇구나.” “……네? 방금 뭐 물으셨죠?” “됐어. 난 이미 대답을 들어버렸어. 낙장불입, 알지?” 그리고 희재는, 그런 배덕한 그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굿바이 키스도 못 하고 헤어졌지? 그게 아쉬워서 그래? 해줘?” 소위 ‘영 앤 리치’라 불리는 이들의 비밀스러운 친목 모임. “좋아. 어떻게 딜을 할 건데?” “네가 원하는 걸 먼저 말해.” “난 충분히 너한테 내 뜻을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 “결혼해, 나랑.” “…….”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난 매일 너와 결혼하는 꿈을 꿨어.” 언뜻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그래. 하자, 결혼.” 사실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상류 사회 속의 모든 개츠비를 위하여.
최악의 소개팅 상대를 만난 모태솔로 다희, 3년 사귄 남자 친구가 바람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모텔 주인 아들에게 들어버린 기구한 팔자의 취준생 정주, 자신의 사수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게 일상인 성형외과 레지던트 1년 차 희재. 마냥 어리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어른이 되지도 못한 어정쩡한 나이 스물일곱에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게 된 세 친구의 연애에 대한 기록. 그 당시의 우리는, 스물일곱이 그다지 어리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으로서 제 몫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물도 쉽사리 흘리지 않았고, 방황을 죄악으로 여겼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우리는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청춘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스물일곱, 우리는 어렸다. 하지만 스물일곱, 우리는 다 자라난 어른이어야 했다.
“나랑 결혼하자.” “싫어요.” “생각 좀 하고 대답해.” “생각 좀 하고 질문해요.” 평범한 스타일리스트 ‘재영’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톱 배우 ‘재욱’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대한민국 여자 중 어느 누구도 그의 연인이 되고, 아내가 되는 상상을 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그녀는 지금 전혀 기쁘지 않다. “결혼 생활은 3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전에 이혼해 줄 마음도 있어.” 이유가 뭐냐고? 재욱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였으니까. 그러니까, 게이한테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거다. 어처구니없게도. 이제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붉게 물든 귀와 붉게 물든 입술 사이 그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법한 진심에 대한 대담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내게 누누이 말했다. 잘생긴 애들은 반드시 얼굴값을 하기 마련이라고. 그러니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보고 만나라고. 꽤 발랑 까진 꼬맹이였던 나는 그래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왕이면 잘생긴 편이 못생긴 편보다 더 좋지 않냐고 대들었다가 등짝을 두드려 맞은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도 꿋꿋이 나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던 내가 아버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게 된 건 바로 저 자식을 만나고부터다!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친남매도, 연인도 아니었던 우리가 예기치 못한 사건과 조우하면서 펼쳐지는 모든 순간들에 대한 회고다.
“우리 이혼해.”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자신이 하려던 말을 그가 대신 해주었을 때.“그저 이 생활이 지겨워졌고, 몇 개월 먼저 끝내고 싶어졌을 뿐이야.”마치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던 지루한 장난감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을 때.“우리 결혼 전에 약속하지 않았나? 사랑은 하지 않기로.”무슨 수를 써도 널 좋아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그래서 로아는 결심했다.평소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저질러 보자고.“혹시 기억해요? 그 아래에 덧붙인 추가 조건.”[상대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면, 계약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혼을 보류할 수 있다.]“우리 이혼 보류해요.”머리가 아닌 마음을 따라 걸어보자고.“합의 이혼, 그딴 거 난 안 해.”
“네가 지원이라고? 예쁘게 컸네.” 혹시나 해서 확실하게 해두는데, 나의 진짜 이름은 ‘지원’이 아니다. “오빠를 오랜만에 본 기분은 어때?” 그리고 이 남자는 나의 오빠가 아니다. “부디 나처럼 기쁘길 바라.” *** 불행과 가난의 연속이던 삶을 살던 진소윤.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서교> 그룹의 행방불명된 막내딸 한지원인 척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잠시 머뭇거린 사이 한지원의 오빠 한서원과, 한지원으로 신분 상승을 하려는 <고선>의 서자 경우진 사이에 단단히 끼어버린다. “목적이 돈이라면, 돈 벌어. 최대한 열심히. 감히 서교에 네 인생을 걸었으면 그에 맞는 보상을 받아야지.”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나날 속에서도 소윤은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거짓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잔혹한 진실도 드러나는데……. “너희들이 인간이냐고!”